<루터란은 무엇을 믿는가?>

흔히 루터교회라고 하면 루터를 믿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 의해서 루터주의에 충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모든 루터교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성경 말씀을 신앙의 기본이 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규범이라고 믿는다.

우리 루터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보편 신조들을 통해 신앙고백을 하고 있으며 초대 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모범적인 예배의식을 통해서 바르고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고, 세상에 나가서 성서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힘써 섬기려고 최선을 다한다.

루터교는 무엇보다도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으로 여긴다. 루터는 전통을 성경 위에 놓은 카톨릭 교회에 대하여 “오직 성서만으로!”를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복음으로 들리는바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며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 이 때 그리스도의 복음의 음성이 들려져 죄, 사망, 저주, 율법의 세력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한다.

성경에 이어서 루터란은 사도신조, 니카야 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서방 교회와 함께, 그리고 여기에 추가하여 복음주의적인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서 및 루터의 소교리 문답서를 기독교의 대표적 교리로 보며,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한 것으로 본다.

이밖에도 루터의 대교리 문답서,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변증서, 슈말칼트 신조 및 일치서를 루터 종교개혁의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해명으로 인정한다.

<루터교 예배 의식>

복음의 재발견은 교리 뿐만 아니라 예배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다. 그러나 루터는 예배 개혁에 있어서 보수적이었다. 카톨릭 교회 안에서 보존되어 온 모든 전통을 내팽겨치려한 ‘열광주의자들’에 대해서 루터는 카톨릭 예배의식에서 복음에 위배되는 것만을 제하면서 좋은 점들을 그대로 발전시켰으며, 그동안 소홀히 여겨진 것들에 대해서는 강조를 하였다.

루터는 무엇보다도 카톨릭 미사에서 설교 없이 성례전만 집행되는 것을 반대하여 설교가 없으면 에배 드리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현존하지 않는 곳에는 참되게 믿는 신자와 순교자도 없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펜의 집’이 아니라 ‘입의 집’으로서 복음 선포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한편 교회는 ‘복음의 창조물’로서 말씀 선포가 교회를 지지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루터교 예배는 교회의 표지인 말씀과 성례전을 두 기둥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 외의 요소들은 예배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는 ‘성례전적 요소’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제사적 요소’는 서로 뒤섞이지 않아야 한다. 이 두 요소는 사회자의 몸의 움직임에 따라 알 수 있는데, 제단을 향하면 ‘제사적 요소’를 가리키는 것이고 회중을 향하면 ‘성례전적 요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죄선언, 성경봉독, 설교, 성례전, 축도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회중에게 오는 것이고, 기도와 찬송, 감사 등은 회중으로부터 하나님에게 가는 것이다.

빛이신 주님을 따라 하나님의 존전 앞으로 나아감으로 시작되는 예배는 이러한 두 요소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감사의 기도, 죄의 고백과 사죄 선언, 영광송, 성경 봉독과 찬양의 화답, 복음서, 신앙고백, 설교, 감사의 예물, 성찬 예식과 예식 전후의 쌍투스(Sanctus), 하나님의 어린양(Agnus dei), 시므온의 노래 (Nunc dimittis), 그리고 감사의 기도와 축도를 거친 후 마지막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권면과 회중의 감사 응답으로 끝이 난다.

또한 말씀은 교회력에 의해 잘 다듬어진 성서일과에 따라 선포된다.

<성례전, 성만찬, 세례> Sacrament, Holy Communion, Holy Baptism...

성례전

성례전은 ‘눈으로 보이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객관적인 성격을 확증해 준다. 성례전은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세례와 성만찬이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교회에는 세례와 성만찬이라는 두 가지 성례전이 있다. 이 두 가지에 의해서만 우리는 신성하게 세우신 표징과 죄의 용서에 대한 약속을 발견한다” 루터 “성례전은 사람들 가운데서 단순히 신앙고백의 표시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표지와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으며, 또한 성례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일깨워주고 굳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아우구스불그 신앙고백서 제13조

세례

세례는 자연적인 출생 하에서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종말적 사건이다. 크리스천의 일생은 죽을 때까지 이 세례의 표징 하에 계속되는 삶이다. “세례란 무엇인가? 세례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에서 이해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계된 물이다. … 세례는 우리 죄를 용서하게 하고, 우리를 죽음과 악에서 해방시키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선포될 때, 이것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준다. …그러면 물이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가? … 물과 함께, 그리고 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하며, 물 속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그렇게 한다. …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있는 물은 성령으로 중생케 하는 씻음이고 생명에 은총을 주는 물인 세례이다” 루터의 소교리 문답서

성만찬

하나님은 세상 어디에나 계신다. 그러나 성만찬에서는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여기’ 계신다. 따라서 성만찬을 받을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보라, 이 말씀으로 나는 모든 저희의 죄의 용서와 영생을 약속하고 남긴다. 이 약속이 취소될 수 없도록 너희 것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너희가 확신하고 알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것을 위해 죽을 것이고, 나의 몸과 피를 그것을 위해 줄 것이며, 그 표징으로 너희에게 그것들을 남길 것이다. 그것들로 인해 너희들이 나를 기억하도록.” 루터, “새 언약에 관하여”

<21세기를 바라보면서...>

루터의 개혁운동은 종교의 영역에만 제한되지 않았다. 그의 종교개혁은 인간이 영위하는 전 삶의 영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개혁의 원년(1517) 이후 거의 5세기가 지나는 동안 그의 개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1997년도판 라이프(LIFE)지 특별호에서는 금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건 중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구텐베르그의 인쇄술과 콜롬부스의 북미대륙 발견과 함께 꼽고 있으며, 영향을 끼친 인물 중에서는 루터를 두번째로 꼽고 있다.

금세기를 닫고 새로운 세기를 여는 순간을 불과 얼마 앞두고 있지 않은 우리는, 지금 과연 무엇을 되돌아보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새로운 세기에는 루터의 개혁 운동이 이 땅에서도 꽃을 발하고 열매가 맺어짐을 소망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말대로 개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그의 전 삶을 움직인 모토대로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할 때(이사야 30:15) 하나님은 우리를 돌아보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선포하면서 기다릴 때 이 땅의 교회는 개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