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흑인 동네에서 상점을 경영하는 한인
흑인동네에서 한인들이 식품점이나 슈퍼마켓, 보석장신구상, 의류상 등을 경영하는 비율이 대단히 높은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왜 한인들은 중산층 혹은 백인 고객보다는 비교적 가난한 흑인 동네에서 상점을 경영하는 것을 선호하는가? 한인들이 흑인 동네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지만, 투자한 자본에 비하여 이윤율이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은 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싼 점포세를 가진 흑인 동네의 상점이 용이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종래에 흑인을 고객으로 하던 사업들이 근래에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으로써 히스패닉을 포함하는 소수민족을 고객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인들이 흑인 동네에서 개업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첬재, 한인들은 흑인 동네의 점포를 싼 값에 사거나 임대하여 개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흑인 동네에서 사업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미국에 이주한 한인들은 원래부터 돈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는데, 흑인 동네 상점 경영은 아주 적은 자본으로도 시작할 수 있었다. 소자본만을 갖고 있던 한인들이 자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흑인 동네 사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지도 모른다. 1960년경까지 미국 흑인들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종 차별을 심하게 받고 있었다. 심지어 흑인들은 백인들이 이용하는 많은 업소를 이용할 수조차 없었다. 때문에 흑인들은 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자신의 동네 업소-흑인들이 독자적으로 이용하는 잡화점, 미용실, 음식점, 모텔, 장의상 등-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업소들은 1960년대에 퇴락한 건물을 점유하고 있었고, 또한 별 이윤이 남지 않는 상태에서 경영되고 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다수의 흑인들이 흑인 동네 외부에 새로 입지한 대형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등을 이용하게 되자, 흑인 동네 상점은 더욱 고객을 잃었다. 또한 1965년과 1968년 사이에 미국 128개 도시에서 흑인들이 백인 상인의 상점을 공격하거나 불을 지르는 일이 일어났다. 이 무렵이 백인들에 대한 흑인의 감정이 최악에 달한 시기였다. 이러한 백인에 대한 적대감, 이윤율 하락, 높은 범죄율 등으로 인하여 백인 상인들이 흑인 동네를 점차로 떠나고 있었다. 한인들은 이러한 흑인 동네 상점을 헐값에 인수받을 수 있었다.

둘째, 바존, 영어, 정보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한인들이 흑인 동네에서 사업하는 것이 가장 용이하기 때문에 흑인 동네에서 상점을 인수하였다. 한인들이 점차로 흑인 동네 상점을 인수하게 되면서 흑인 동네 상점을 예전처럼 헐값에 사거나 임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새로 이민 온 한인들 중에는 소지한 자본의 한계, 영어 구사력의 부족, 다른 정보의 부재 등 때문에 여전히 흑인 동네 상점을 인수받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미국에 이주한 한인들이 중산층 백인 동네에서 사업하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 관습에 익숙하지 않고 영어 장애를 갖고 있는 한인들이 중상층 백인 고객의 까다로운 구미를 충족시키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백인들은 한푼이라도 물건값을 깍으려 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손해 배상을 물리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백인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것은 더욱 힘이 들었다. 더구나 백인 동네에는 대규모 쇼핑 센터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쇼핑 센터의 체인 상점과 가격이나 서비스로 경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셋째, 흑인 동네 상점을 경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지만 투자한 자본에 비하여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었다. 흑인 동네의 흑인 고객들은 충동적 구매를 하는 경향이 있고, 상품의 가격에 대하여 예민하지 않으며, 일시적 유행을 좇아 상품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 한인들은 이러한 흑인 고객의 입맛에 맞는 적절한 상품을 진열함으르써 상당한 매상을 올릴 수 있었다. 비록 흑인 동네에서 상점을 경영하는 것은 권총을 소지한 강도의 침입 등 위험 부담이 높지만, 상당한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수의 한인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흑인 동네 사업을 선택하였다. 미국에 이주한 한인 이민들은 어떠한 고생을 하더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살아 본 한인들은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웬만한 위험은 기꺼이 부담하려고 하였다.

(3) 다양한 한인 사업체의 등장
1968년 약 150여명에 불과하던 애틀랜타 한인의 수가 1973년 약 450명에서 5백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렇게 한인 이민의 수가 급증하면서 다양한 한인 업체들이 개업하기 시작하였다. 1974년 말에 조사한 한인 업체의 수는 서양 식품점이 1개, 동양 식품점 2개, 서양 식당 1개, 옷가게 2개, 세탁업소 1개, 부동산업 1개, 여행사 1개, 가발업소 18개, 그리고 신문사 지국 1개 등으로 조사되었다.

1975년도에 접어들면서 한인 상공회의소가 창립되었고 초대 회장에 노화석씨를 선출하였다. 당시 약 30명의 한인 상공인들이 모여 한인 상공회의소를 창립하였다. 1975년경부터 이 지역으로 간호원, 메카닉(기술자) 등이 모이기 시작하여 한인 업소도 늘기 시작하였다.

1979년도까지 여행사 3개, 신문사 2개, 한인 방송국 1개, 서양 식품점 18개, 서양 식당 12개, 세탁업 9개, 잡화 15개, 자동차 정비업소 2개, 잡화 도매상 1개(대표 김문성), 한국 식당 2개 등 한인들의 사업체가 늘어가는 추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