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주년 3.1절 기념행사가 때 아닌 악천후로 취소됐다.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애틀랜타에서 수북하게 쌓인 함박눈에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차들은 거북이 걸음을 벗어나지 못했고, 익숙하지 못한 운전자들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냈다. 한인회 측에서는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염려해 취소한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애틀랜타의 나무는 사계절 내내 뜨겁게 내리쬐는 풍성한 햇살과 비옥한 풍토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하지만 비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게 몰아치면 여지없이 나무는 뿌리째 뽑혀 근처 주택이나 자동차에 넘어지곤 해서 안심할 수 없다. 빨리 자라나는 만큼 뿌리가 깊숙하지 못한 치명적 단점을 지닌 것이다.

이민사회도 그렇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불어 닥친 ‘이민붐’은 남쪽 시골 애틀랜타에서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많은 이민자들을 끌어 모았다. 순식간에 엘에이, 뉴욕에 이어 3대 한인커뮤니티라는 타이틀도 거머쥐게 됐다.

뿌리 얕은 나무가 비바람에 쉽게 쓰러지듯, 거침없이 자라온 이민사회에서 외적 성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뿌리교육이다. 내 자식, 내 사업체, 내 교회가 잘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다음세대를 위한 뿌리교육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졌어도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라고 물어오는 질문에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3.1절은 지금은 비록 떠나왔을 지라도 조국이 일제의 오랜 탄압에서 벗어나 한 국가로 세계 속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감격스러운 날이다. 90년이 지났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후손들에게 이야기해주고, 그 의미를 되새겨야만 이들이 뿌리를 잃지 않고 튼튼하게 미국 사회 속에서 자라나 당당하게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행사는 비록 취소됐지만, 가정에서 혹은 교회에서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조국의 우수성과 아름다운 역사와 전통을 늘 회자하는 디아스포라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