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새벽기도회 마친 후 친교 테이블에 고구마가 제공되었다. 그게 어떤 고구마인지 아는가! 그 고구마는 평범한 고구마가 아니다. 왜냐하면 감기몸살로 몸을 가누지 못하시는 집사님이 삶아서 성도들의 친교를 위해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몸이 불편하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내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해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어진다. 그런데 자신의 셀이 섬겨야 할 차례였기에 꼼짝달싹 하기도 귀찮을 텐데 토요일 아침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친교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며 고구마를 삶아서 보낸 것이다. 그 고구마를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집사님의 섬김이 너무나도 귀해 그냥 먹기에는 너무나도 귀한 아침 식사였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식탁이었다.

금요일 집사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고 너무나 힘겨운 목소리였다. "목사님, 회복이 안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친교를 위해 준비해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몸이 편찮으신데 다른 분을 준비하도록 할테니 그냥 두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집사님이 육신이 피곤하고 지쳐있지만 하시도록 두었다. 매정한 목사같이 보일런지 모르지만 집사님이 하나님께 칭찬받게 하고 싶었다. 집사님의 그 귀한 섬김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에 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 감기 몸살로 더러 눕게 되는 정도가 되면, '목사님, 내일 아침 우리 셀이 섬겨야 하는데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몸이 그러면 다른 셀 원들에라도 부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만한 셀 원이 없으셨던지 친히 그 사역을 감당하신 것이다.

모두가 자기 몸만을 도사리고 자신만을 챙기는 세상에 집사님 같은 분들의 섬김이 있기에 여전히 우리 교회가 건재한 것 같다. 속으로 '집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귀한 일 하셨습니다' 칭찬이라도 하고 싶지만 앞으로 하나님께 받으실 상급을 위해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참 행복했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고구마 하나가 목회자를 행복하게 한 것이다. 그 집사님 뿐이랴! 칭찬 한마디 하지 않지만 이름도 없이 성도님들의 배후에서 자신의 것을 나누며 귀한 섬김의 삶을 사시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 계신다. 그들을 보면 소망이 넘친다.

돈이 남아돌아가기 때문에 남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남아돌아가기 때문에 남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남아돌아가도 섬기지 못하시는 분들은 섬기지 못한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요, 믿음의 문제이다.

이민 생활은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빡빡하고 시간도 부족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섬김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예수님의 모습이요, 믿음의 본질이요, 신앙의 공동체의 특징이요 하늘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체험을 경험하고 싶은가? 섬겨보라. 예수님을 믿는 생활이 무엇인지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섬김의 삶을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