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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갑 교수 |
보스턴의 코너스톤 영어회중을 찾았다. 아들 단(Daniel Huh)이 입학한 하버드대학에서 주최하는 신입생 학부모 초청 주말프로그램에 참석하여 주일을 케임브리지에서 보내었기에 동행한 가족과 함께 주일예배 장소를 찾아보았다. 코너스톤은 하버드 스퀘어에서 가장 가까운 한인교회로서 기숙사에서 걸어 1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교회의 모체는 연합감리교회로서 인근에 위치한 고르든 콘웰 신학교의 영향력으로 독립하여 성장한 영어회중 교회라고 한다.
교단은 복음교회 Evangelical Covenant Church(www.covchurch.org)에 속하여 있으며 보스턴 Back Bay지역에서 4년 전에 시작한 한인2세 및 다민종 교회로서 현재 두 곳에서 주일예배를 안내하고 있다. 보스턴 예배장소는 오후 2시에 모이는데 80%가 대학생들이고 약 200-250명이 출석한다고 한다. 오전 10시 30분에 모이는 케임브리지 장소는 반대로 80%가 대학원생 및 직장인들이 모이고 결혼한 가정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하버드가 위치한 케임브리지 예배는 초등학교를 빌려서 시작한지 약 2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벌써 100여명이 5인조 밴드의 인도로 30분간의 찬양에 이어서 광고, 인사, 그리고 설교의 순서로 진행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출석인원 거의 모두가 30세 미만으로 한인 2세들이 주를 이룬지라 어느 EM에서나 볼 수 있듯이 예전이 없는 편안한 차림의 모습, 강의식 설교, 그리고 찬양 팀의 악기 세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더군다나 초등학교를 빌려서 예배장소로 사용하기에 강당의 장식이 학교 장식 그대로이고 예배실의 모습에서 종교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고 또한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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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코너스톤 교회 홈페이지 |
그러나 강단의 산만함을 커튼으로 가리고 소리에 더 집중하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다. 파워 포인트가 투영된 스크린 외에는 보이는 것에 별로 신경 쓰지 못하는 예배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예배의 핵심은 설교자의 말씀 전달로서 그 방법론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정보제공으로 부자나라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강력한 호소로 진행하였다. 그러기에 회중에게 죄책감을 유발하는 메시지였지만 곧 그 안에서 나도 죄인이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살 길임을 고백하게 하는 복음신학이 드러난 설교이다.
그렇다면 45분의 설교 외에 어떤 시간들이 회중의 참여를 꾀한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집중을 요하는 설교시간이 끝나며 설교자의 마침 기도가 진행 될 때에 다음순서를 위하여 기도 중에 찬양 팀이 움직이며 Set Up하는 부산한 소리를 들으면서 어찌 하나님은 기도 중에 우리를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되었다. 예배 인도자들 자신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결핍되어 있는 모습이다.
회중의 응답과 참여가 제한된 설교와 찬양을 듣기만 하다가 90분이 지난 이 예배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인 교회라고 하기에 인색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제는 아이들의 부모로 장성한 청장년의 한인 2세들이지만 왠지 주일학교, 아니 중고등부가 모인 Youth그룹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음을 보면서 이들만의 장점을 찾기에 노력하여 보았다.
교회장소가 하버드의 전신인 Radcliff 여자대학의 Quad에서 모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버드 학생들이 별로 없음을 발견함은 또 하나의 아쉬움 이었다. 코너스톤은 인근지역의 5개 캠퍼스 그룹과 8개의 공동체로 조직되어 있으며 매우 활발한 성공적인 교회로 입소문이 난 교회이다. 그러나 부모의 심정으로 아들이 이 회중과 친구 될 수 있는가를 물어본다. 주일 아침 늦잠자다가 기숙사 방에서 일어나 쉽게 갈 수 있는 대학교회, 그리고 www.memorialchurch.harvard.edu의 유명한 설교자요 교목인 Peter Gomes목사가 아들에게는 편한 선택이겠지만 그 곳에는 신앙공동체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과연 어느 공동체에 속하여 개인의 영성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같이 성장함을 꾀하는가를 아들과 함께 고민하며 찾아주고 싶은 것이 솔직한 부모의 심정이다.
그러나 나의 아들딸과 같은 한인2세들이 모여 자립하여 시작한 오늘 예배를 통하여 이 모임이 교회라고 부르기에 인색함은 무슨 이유인가? 사실 어제저녁 하버드 학생합창단의 연주가 기독교 예배는 아니었어도 더 종교적이었음을 기억한다. 모든 합창의 가사로 성경말씀이 더 많이 인용되었으며 경건성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오늘 예배보다 더욱 뛰어난 예술성과 아름다운 감동으로 전달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회중의 참여 또한 적극적이었고 학부모와 친구들로서 자녀들과 학우들이 열심히 연습하여 준비한 합창소리에 뜨거운 박수로서 환호의 갈채를 보내지 않았는가? 그 자리에는 많은 동양권의 학생들과 부모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하나님의 임재를 찾는 교회에서는 그러한 감동과 준비성은 찾아볼 수도 없으려니와 오히려 학교에서의 학문적 탐구는 신앙생활에 거추장스러운 옷으로 여겨지며 홀가분하게 벗어 던지고 오히려 가벼운 옷차림인 캐주얼적인 사고방식과 신앙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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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코너스톤 교회 홈페이지 |
한인2세들의 EM(누구는 EM은 Easy Ministry이고 KM은 Killing Ministry라고 함)은 요사이 언급되는 이머징신학과 변화하는 다민종 예배의 모습을 얼마나 고민하며 받아드리고 있는가 묻고 싶다. 소리의 파워와 볼륨을 키우기보다는 그 내실적인 면인 블랜딩과 조화, 그리고 색깔의 독특성을 찾아보고자 함에 굶주려 있음을 말한다.
이 모든 이슈들이 비단 코너스톤 교회에 대한 비평이 아님을 밝히고 싶다. 이것은 내가 속하여 있는 미주 한인교회의 전체가 직면한 문제이다. 그러기에 어느 EM예배를 참석하여도 동질성의 편안함을 느끼지만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하는 모순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기에 가장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여기서 오늘 나의 의견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그저 침묵을 지키며 첫 예배에 출석한 아들의 반응만 유심히 살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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