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섭 목사(성약장로교회) 저서 <커피 한잔과 함께 하는 교회와 세계사>(말씀과만남)를 연재합니다. <성경과 세계사>의 후속편인 이 책은 사도시대부터 종교개혁 전까지 교회사(史) 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뗄 수 없는 관계이듯 세계사((史) 속에서 교회가 겪어온 많은 일들을 유기적으로 엮은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또한 ‘커피 한잔과 함께 하는’ 이라는 제목처럼, 평신도의 관점에서 쉽게 책을 펼쳐 들고 교회의 역사 현장 속에 들어가 볼 수 있도록 손짓하고 있습니다. 기독일보에 개제되는 모든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았으며,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1. 네로 황제와 핍박받는 기독교
예수님과 사도시대의 지중해 지역은 로마라는 거대 제국이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지중해는 남부 유럽과 지금은 흔히 중동지역이라고 불리는 서남아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에 둘러싸인 바다입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한 작은 촌락 로마가 성장하면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였습니다. 그 후 로마는 북 아프리카의 큰 세력인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을 거쳐 서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를 포함하는 지중해 서쪽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동쪽으로 세력을 넓혀 알렉산더 이후의 분열된 헬라제국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지중해의 동부까지 모두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 가운데서 예수님의 탄생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성경은 그 시기를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라고 분명한 역사적인 때를 알게 해 줍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쥴리어스 시이저(라틴어식 발음으로는 쥴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로서 로마의 첫 번째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Gaius Octavianus)입니다. 예수님 이후 사도들에 의해 로마제국내의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지도될 때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엄청난 박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바로 로마의 대 화재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초대 기독교 시작의 역사를 다룰 때 반드시 핍박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 로마시의 대 화재로 인하여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게 되었던 그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 네로
사도시대였던 64년 여름,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시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대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6일동안 강력한 불길이 온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14개 구역으로 나누어진 도시 중 10개 구역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황제 네로(Tiberius Claudius Nero Domitianus Caesar)가 로마를 자신의 뜻대로 다시 건설하기 위해 로마시에 불을 지른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런 소문은 퍼져가며 확대되어서 후에는 로마가 불타고 있는 동안 네로황제가 수금을 타며 노래했다는 소문으로까지 발전하였씁니다. 그러자 시민들의 분노는 네로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네로는 자신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았는데 그 대상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네로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시를 불질렀다고 알리고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네로가 황제가 된 경위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입니다. 네로황제의 아버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40년경에 죽었으며, 네로는 아우구스투스황제의 증손녀이자 어머니인 아그리피나 손에 자랐습니다. 아그리피나는 두 번째 남편을 독살한 뒤, 삼촌인 클라우디우스황제(Tiberius Claudius Nero Caesar Drusus)의 아내가 되어 황제의 친아들인 정통 후계자 브리탄니쿠스를 제쳐두고 자기 아들 네로를 후계자로 삼도록 황제를 설득시켜 황제의 딸 옥타비아를 네로와 결혼시켰습니다. 그녀는 황제와 결혼하기 전인 48년에 황제의 전처였던 발레리아 메살리나의 살해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55년에는 브리탄니쿠스를 독살하는 등 네로를 권좌에 앉히기 위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고 자신을 반대하는 궁정 고문관들을 제거했습니다. 54년에 황제가 죽자마자 그녀는 자기편인 근위대장인 섹스투스 아프라니우스 부루스를 통해 근위대가 네로를 황제로 선포하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원로원에서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으며, 로마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17세도 채 안된 소년에게 절대권이 넘어갔던 것입니다. 이 소년 네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10년째 되는 해에 화재가 발생하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큰 핍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에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순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법에는 로마 시민은 십자가에 처형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의 사람들은 많은 신들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리스의 신들을 받아들여서 숭배하는가 하면 죽은 황제도 신으로 숭배하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알려지지 않은 신까지도 숭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서 기독교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성찬식에서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표현이 식인 풍습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시 노예와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노예와 여자를 동등하게 대우하였습니다. 이런 차이점들과 오해들이 있는 가운데서 네로가 만든 누명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으며,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형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화재로 인한 로마시민들의 분노가 기독교인들을 향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