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배달 된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병중에 하나가 <조급병>이랍니다. 서둘러 성장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이 사회학자는 분석한 것입니다. 개인도 그러하고, 사회도 그러하고, 심지어 나라도 그러하여서 너무 조급하게 뭔가를 이루려다가 도리어 후유증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서구 선진국이 최소 200년에 걸쳐 이룬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안정과 번영을 한세대만에 이루려고 했던 한국의 조급함이 10여년 전의 IMF나 오늘의 사회적 불균형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치적 조급병도 일어날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어렸을 때 어지간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좀 길어야 어른인 것처럼 생각하던 그 시절 무던히도 훈육선생님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머리를 깍지 않았습니다. 목소리가 굵어야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때는 억지 쇤소리를 내면서 얼른 어른이 되기를 학수고대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집 어린 아이들이 벌써 그 어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그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이 되고 싶은 열망이야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성숙은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한 양식을 섭취해야하고 적당한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저를 포함한 많은 목회자들에게도 이 현대인의 조급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느 목회자인들 교회성장을 최고의 목회방침으로 삼지 않는 목회자가 있을까요? 질이든 양이든...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는 평신도라면, 그리고 교회 지도자라면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말대로 “교회성장이라면 양잿물이라도 먹겠다”는 열망을 가진 분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깊이 생각하게 한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홍사성이란 사람이 쓴 <채근담>이란 책에 “오래 엎드린 새가 높이 날고, 먼저 핀 꽃이 빨리 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높이 날기 위해서는 그만큼 오래 엎드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일수록 오래 엎드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13년을 기다리면서 마침내 하나님이 사용하게 되었고, 모세는 출애굽을 하면서 40년을 광야에서 엎드리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우리 주님도 3년 사역을 위해 30년을 엎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 이런 엎드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래 엎드리지 아니하고 높게 날려고 하기 때문에 도리어 쉽게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요? 엎드리는 것이 그렇다고, 나태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충분한 영적 에너지와 양식을 채우라는 말입니다. 성숙해지기 위해서 건강한 음식과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양식을 끊임없이 공급하며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찰하라는 말입니다.

커다란 저수지일수록 오래 채워야합니다. 채울 사이도 없이 그저 내보내는 저수지는 쉽게 말라버립니다. 애틀란타의 젖줄인 레이니어 호수가 한번 고갈되고 나니 다시 채워지기까지는 아직도 2-3년은 더 걸려야 한답니다.

깊은 신앙인일수록 오래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오래 말씀을 담는 사람입니다. 오래 엎드려 스승의 삶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오래 엎드린 새와 같이 결국 높이 날 수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