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여느 때보다 기독교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 가운데서 이 현상은 더 심각한 듯 보인다. 경제 위기로 인해 ‘지성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마저 ‘취업 양성소’로 변해버린 지금,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포스트모던보이, 교회로 돌아오다(포이에마)>의 부제는 이에 힌트를 주고 있는 듯 하다. 바로 열정과 용기에 ‘지혜’를 더한 전도. 꽃피는 봄이 오면 ‘꽃보다 아름다운’ 새내기들이 몰려올 캠퍼스를 누벼야 할 전도자들이 읽어볼 만 하다. 체험을 통한 실제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다.

미국 IVF에서 1990년대부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캠퍼스 젊은이들의 마음을 열어 온 돈 에버츠(Don Everts)와 더그 샤우프(Doug Schaupp)가 쓴 이 책은 무신론자가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다섯 개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회심한 젊은이들이 믿음을 향한 여정에서 반복적으로 공통된 단계를 거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돈과 더그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수를 향한 길을 정확히 보게 될수록 우리의 전도는 더욱 자연스럽고 적절하며 균형잡힌 것이 된다”며 “이 말은 우리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믿음을 향한 길을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임무인 전도에 대한 영적 자유와 능력을 맛보게 된다는 뜻”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들은 이 방법들이 성공적인 전도를 보장한다고 과장하지도 않고, 완벽하다고 자만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도자들이 ‘모범답안’만을 전도대상자들에게 늘어놓기보다는 ‘현명한 질문’을 던지도록 도와준다. 다음은 저자들이 말하는 ‘다섯 가지 문턱’의 요약.

첫번째 문턱: 그리스도인을 신뢰하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마케팅 전략’에 싫증을 낸다. 사회가 하나님, 종교, 교회를 존경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오늘날 복음전도자들은 ‘한 번 물면 그만’이라는 식의 전도 때문에 신뢰와 거리가 가장 먼 사람들로 전락했다. 이처럼 불신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회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신뢰하게 된 경험이 믿음을 향한 길에서 견인차와 같았다고 증언한다.

두번째 문턱: 호기심을 품다

그리스도인을 신뢰한 이후에는 완전히 새로운 문턱이 나타난다.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에서 호기심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일상적인 사건들을 영적인 것을 보는 창으로 활용하셨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같은 영화가 나올 때만 복음과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적절한 질문과 비유를 사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이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세번째 문턱: 삶의 변화에 마음을 열다

다섯 개 문턱 중에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문턱이다. 변화는 아름답지만, 두렵기 때문이다. 늘 열린 생각을 하는 것 같은 ‘포스트모던 시대’ 사람들에게도 이는 다르지 않다. 충분히 시간을 주고 그들의 탐험을 격려하며, 고심하는 친구들을 재촉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서는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 누군가를 위해 우리가 베풀 가장 큰 사랑은,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고 그들을 대면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것이다.

네번째 문턱: 하나님을 찾다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서도 두서없이 길을 걷는 사람과 목적을 갖고 하나님을 좇고 예수님을 탐구하는 사람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 단계에서 ‘유령 구도자’와 ‘참된 구도자’가 다르다. 참된 구도자는 이해하고 결론에 다다르기를 원하며, 진실로 명확한 해답을 찾는다.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하기 시작하고, 손실을 따져보기 시작하며,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 젖어든다. 우리는 여기서 좋은 면만을 보여줘서는 안 되고, 흐트러진 모습까지 모두 드러내야 한다. 특히 이때 간증의 힘은 놀랍다.

다섯번째 문턱: 하나님 나라에 들어서다

사람들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문턱을 넘나들도록 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울리는 배려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첫번째·두번째 문턱과 다섯번째 문턱은 다르다. 간섭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오히려 그들의 구원의 길에 방해가 된다. 문턱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결단과 헌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하되,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을 하라. 복음이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한 주문처럼 싸구려로 여겨지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순간의 영적 전쟁은 최고조에 달하므로, 이들의 여정과 함께하는 동안 우리는 인내하며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