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는 드라마 ‘에덴의 동쪽’이 한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미숙 송승헌 씨 등 연기파 탤런트들의 연기와 탄탄한 이야기 구성, 빠른 속도 전개 등이 인기의 원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더 흥미를 끄는 것은 악인인 신태환이 얼마나 더 악해질 것인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 그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에덴의 동쪽'이란 말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죤 스타인백(John E. Steinbeck)의 소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에서부터 일 것입니다. 특히, 이 소설이 1955년도에 엘리아 카잔이 메가폰을 잡고 제임스 딘이 주연을 맡아 영화화가 되므로 더욱 사람들의 내리에서 사라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조부가 되는 헤밀톤 가에서 시작되는 자기 가족에 대한 자서전적인 요소가 짙은 작품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주 살리나스 계곡과 향락의 도시 몬트리얼의 상반된 배경을 통해서 죄 가운데 사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가족들에게 전개되는 마지막 부분 몇 장면이 우리의 여운에 남습니다.

본래,‘에덴의 동쪽’에 대한 이미지는 구약성서 창세기 앞부분에서 나오는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주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에덴의 동쪽 ‘놋(Nod)’에서 살아가는 아담의 가족들의 삶에서 따온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가족들이 왜 하필이면 멀리 떠나지 못하고 에덴의 동쪽 ‘놋’이란 곳에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았을까? 이것은 인간의 조상이 죄를 짓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대화하며 지내던 동산이요, 모든 것이 풍부한 기쁨의 동산 에덴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언젠가는 쫓겨났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그들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을 추구하고 에덴동산을 그리워하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종교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할지라도 인간은 신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성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는 죄를 지은 사람은 끊임없이 그 죄성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며, 인간은 그것을 통해서 괴롭힘을 당합니다. 이 또한 인간성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두 가지의 본성, 하나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본성과 어쩔 수밖에 없이 죄를 짓고 살게 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본성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찾는 행위는 어찌 보면 너무나 처절합니다. 참된 길을 알지 못해 몸부림치는 종교 행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인간의 종교적인 시도는 너무나 처절합니다. 그것은 미개인들의 종교 행위에서나 무속 종교일수록 더욱 처절합니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가 가슴 아프게 생각해할 문제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동쪽’의 이미지는 대부분 죄인들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서쪽’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서 순례를 하는 인간상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과 선을 추구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막(聖幕)에서도 사람들이 동쪽 문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나아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계절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동방에서 박사들 세 사람이 새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만나려오는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먼 순례의 길을 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기뻐하며 예물을 드립니다. 아기 예수를 만나려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눈보라와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이 길을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연구하며 내일을 예견하는 점성가요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성서는 그들을 통해서 참 진리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의 계절에 ‘에덴의 동쪽’에서만 머물지 말고, 아기 예수님을 만나려 길을 떠나 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