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부터 배를 탔던 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존을 해군의 선장으로 키우기 위해 훈련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과정을 이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행동과 반항적인 태도 때문에 계속 강등되었고 심지어 처벌까지 받았습니다.

20대 초반, 존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나르는 그레이하운드라는 배의 선원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항해 중에도 사람들을 비꼬았고, 특히 신앙인들을 조소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존이 탄 배가 광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배가 빙빙 돌아 파도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더니 갑자기 바닷물 속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곧 이어서 배의 가장자리가 부서져나갔고 선실은 물로 가득 차 오르면서 침몰하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존과 다른 선원들은 배를 구하려고 9시간 동안이나 사기를 잃지 않고 발버둥치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어쩌면 그 날 밤이 그들에게 최후의 순간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때 반항적이었던 존은 오싹한 공포감마저 느꼈고 갑판 위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인간들의 노력이 소용없어질 때 모든 선원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폭풍우 속을 헤치고 생존한 존은 영국으로 돌아간 후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노예선 선원에서 찬송가 작곡가로 바뀐 그가 바로 존 뉴턴(John Newton)입니다. 한 때 그렇게도 반항적이던 인간이 변하여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와 같은 은혜로운 찬송가를 작곡하고 당대의 위대한 설교자가 되어 그 후 50년 가까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다가 일생을 마쳤습니다. 위기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위기 속에 하나님의 선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는 1882년 1월 30일에 미국 뉴욕 주 북부의 하이드파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루스벨트는 1904년 만19세 때 하버드대학에, 그리고 1908년 콜롬비아대학의 로스쿨에 입학하여 졸업하였습니다. 1920년 대통령선거에서 그는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공화당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선거 다음 해인 1921년 여름 별장에서 찬물에 빠져 하반신 불수라는 치명적인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뼈를 깎는 재활 치료와 노력을 하여, 도움이 필요하기는 해도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자 다시 정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1928년 뉴욕 주지사에 당선되었고, 두 번에 걸친 임기 중 '최고의 지사'라는 칭송과 함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을 증명받고 마침내 193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4선에 성공하였습니다. 그의 재임 중 찾아온 경제 대공황에 대해서는 뉴딜 정책이라고 불리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여 전쟁을 수행하였습니다. 미국의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요즘 그의 이름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이 경제 대공황으로 은행이 파산하고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고 전체 노동인구의 네명 가운데 한명이 실업자가 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공포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람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 거센 비평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대립에 대한 두려움, 능력부족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갖가지 두려움에 직면합니다. 사람들은 난관에 부딪히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두렵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얽어맵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의 반대말은 믿음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예수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