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백 교회의 담임 목사 릭 워렌은 헌신을 강조하는 목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교인들에게 강력하고 담대한 헌신을 요구한다. 한번은 릭 워렌 목사가 설교를 마치고 교인들에게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며 그 헌신을 카드에 기록해 제출하라는 도전을 하게 하였다. 교인들의 시간, 돈, 목적, 꿈, 직장, 사업 등을 모두 주님께 바치겠다고 헌신하는 담대한 시도였다. 그런데 그 결과 담임 목사 자신도 깜짝 놀란 헌신의 결과가 나왔다. 수 천명의 교인들이 자신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그 중에 더 놀라운 것은 177명의 수 년동안 교회를 나왔지만 한번도 헌신해 본 적이 없는 교인들이 헌신하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지난 해 아르헨티나 현지 목회자 세미나에 나 자신도 그런 강력한 헌신의 결단을 촉구한 적이 있다. 목회자 세미나를 하는 동안 주님께서 내 마음에 여기에 모인 목회자들에게 매일 새벽 기도를 시작하겠다는 헌신을 시키라는 내적인 음성이 느껴졌다. 아르헨티나는 밤의 문화이다. 밤 10시부터 식당이 서서히 열기가 시작되어 새벽 2시 - 3시 되어야 그 열기가 종료되는 철저한 밤 문화이다. 그런데 그런 문화권에 사는 목회자들에게 새벽 기도의 헌신이란 무모한 것이였다.

그러나 강권적으로 계속되는 주님의 마음을 뿌리칠 수 없었다. 나는 내 자신과 섬기는 교회가 받고 있는 새벽 기도의 축복을 나누면서 현지 목회자들에게 도전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약 100 여명의 목회자가 참석했는데 그 중 80% 이상의 목회자가 새벽 기도를 하겠다고 헌신한 것이다. 그 날 나 자신은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커다란 헌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담대한 헌신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담대한 헌신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감동을 줄 때 그 헌신을 기꺼이 수용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목적을 위한 큰 헌신은 교인들에게 혹은 목회자들에게 감동으로 와 닿는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의 비전을 향해 헌신한다. 때때로 헌신이 실패하는 것은 필요성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이다. 헌신의 동기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비전이 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교인들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며 그들로 담대한 헌신의 사람으로 나아가게 한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헌신을 결단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삶을 바쳐 하나님을 알고 학습하는 영적 헌신을 드리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헌신의 삶을 살아 가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교인들이 자신의 시간과 은사를 드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헌신의 결단을 하도록 해야 한다. 교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물질을 과감히 헌신하도록 결단하게 해야 한다.

헌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다. 헌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난다. 성경은 그러한 헌신과 축복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 오병이어의 헌신을 드린 그것이 오천명이 풍성이 먹고도 남는 기적의 은총이 되지 않았는가? 자기에게 있는 한 웅큼의 밀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사 선지자에게 드린 사렙다 과부의 희생적인 헌신이 그 가정의 축복으로 임재하였다. 헌신과 희생이 개인의 축복, 가정의 축복, 교회의 축복, 그리고 사회와 그 나라의 축복으로 환원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수많은 다양한 헌신들이 세상 안 팎에서 교인들에게 요구되고 있다. 교인들은 자신들의 헌신을 세상의 단체, 정치적 그룹, 사회 봉사를 위해 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교회가 헌신의 훈련을 시키지 않아 교회를 향해서는 인색한 헌신을 한다면 그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다. 교회란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위대한 헌신의 사건이 나타난 곳이다.

교인들을 영적으로, 사역적으로 끊임없이 헌신 시키라!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사역을 위해 드리는 놀라운 헌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