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집시선교 사역의 또 다른 조력자인 중동 A국 출신의 헝가리 종합병원 외과 의사 M과의 첫 만남을 이야기했다. 그는 나의 부러진 팔을 염가(?)로 수술을 해 주면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가 의료현장에서 어떻게 선교 사역자들과 집시형제들을 돕고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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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M의 보이지 않는 섬김과 돌봄
집시선교사역의 동역자인 아내인 안나 선교사에게는 외동딸 예원(리디아)를 낳은 이후부터 당뇨가 있게 되었다. 당뇨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성인병으로 늘 세심함이 따른다. 식사 조절 그리고 병세가 조금 더하면 약을 먹어야 하고 심하게 되면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한데 의사 M은 의료보험 카드가 없는 우리 가족에게 특히 안나 선교사에게 당뇨가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함께 동역하는 다른 선교사 가족들의 건강까지 그가 의사로 여러 조언과 함께 크고 작은 여러 질병으로 인해서 처치를 받아야 할 모든 일들을 불편함이 없도록 돕고 있다.

지난 연말 나는 또 다른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나에게는 다름 아닌 엄지발가락 밑에 뼈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외반증이라 불리는 증상이 왼발 오른발 모두 있었는데 유독 오른 발이 심했다. 구두를 신으면 그 부분이 헤어지기가 일수였고 날씨가 궂으면 그곳에 통증이 있곤 했는데 의사 M은 늘 나에게 예쁜 발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에 지난 해 가을이 되자 그리 선교사역이 바쁘지 않았을 때인데 오른 발 수술을 위해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진작부터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 나눴던 터여서 발 수술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M이 먼저 모든 수속을 해놨는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수술 전에 간단한 검사와 이어서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의사M은 나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하라 그리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마취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나의 오른 발의 튀어나온 뼈를 깎는지 수술 장비의 음이 들리더니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모든 수술이 마무리되는 듯하였다.

수술을 마친 후에 병실에서 하루를 머문 뒤에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퇴원을 할 때에 의사 M은 자신이 퇴원 수속을 마쳤으니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하였다. 수술을 마치고 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병원비가 얼마 나왔는지 보다는 우선 퇴원하고 나중에 의사 M에게 돌려주면 되려니 하고 퇴원을 하였다, 집에 돌아온 이후 의사 M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집으로 와서 상처 부위를 살피고 소독을 해주곤 하였다. 며칠 이 지난 후에 조심스럽게 수술비가 얼마나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가족 신분으로 수술을 했기에 얼마 나오지 않았다는 답변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신의 월급에서 두어 달에 걸쳐 수술비를 지불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 M은 나를 자신의 친형처럼 생각하고 의사로서 자신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선물이 외반증을 수술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발이 튀어 나오지 않고 의사 M의 이야기대로 예쁜 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집시를 사랑하는 의사…차별 없는 사랑으로 의술 베풀어
올 여름에는 헝가리 샤로스파탁 개혁신학교 전임 학장이었던 죠리 이스트반(Gyori Istvan)교수에게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사보 다니엘 목사님을 통해서 들었다. 또한 다니엘 목사님은 이스트반 교수의 병이 악화되고 있지만 헝가리의 병원은 요즘 국가의 재정 적자가 심각해서 의료분야의 예산이 많이 깎여 정한 수만 진료를 할 수 있어 이스트반 교수는 약 20여 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너무도 시급한데 무작정 기다릴 수만 없어서 이스트반 교수를 도울 방도를 물으시기에 먼저 의사 M에게 밤 10시가 지난 늦은 시간이었지만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은 의사 M은 간밤에 담당 의사와 협의를 했는지 다시금 나에게 전화하기를 다음날 아침 일찍 이스트반 교수를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이스트반 교수님 집으로 갔는데 그분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분의 심장에 문제가 있음을 얼굴을 통해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스트반 교수를 차에 싣고 병원에 도착을 하니 오전 7시 30분 벌써 담당 의사가 이스트반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스트반 교수는 즉시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듣기로는 한 주에 가까운 기간 동안 여러 검사를 마치고 다른 도시에 있는 더 큰 도시의 병원으로 이송하여 그곳에서 장시간에 걸쳐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병원에서 심장 수술도 잘되어 지금은 퇴원하여 건강을 회복 중에 있는데 그때 당시에 시간이 지체되었으면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 M은 응급실 닥터로 일을 하면서 선교베이스가 있는 샤로스파탁 시뿐 아니라 인근에 있는 여러 마을에서 집시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사고, 사건 등 가장 빠르게 정보를 접하곤 한다. 그래서 의사 M을 만나면 최근에 어느 마을에서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서는 의사 M은 나에게 그들에게 필요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하였다.

집시선교 사역이 진행 중인 체펠 마을, 홀라스호목, 티사카라드 등 집시형제들이 늘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인해서 병원을 찾아야 할 때 그들은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한다. 그리고 나면 나는 다시금 의사 M에게 전화로 부탁을 하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부탁한 집시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헝가리 사회에서 때로는 보이지 않게 차별과 소외를 당하고 있는 집시 형제들이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의사 M은 비록 집시 환자일지라도 소홀함이 전혀 없는 친절한 의사다. 의사 M을 통해 수술이나 치료를 받았든 내가 알고 있는 집시 형제자매들- 라찌, 이봐, 에리카, 이그나츠-을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그들 모두 의사M의 친절함에 감동 되어 그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의사 M을 이야기하기를 “그는 집시를 사랑하는 의사”라고 한다.

복음의 필요성을 느끼는 M이 속히 예수를 영접하기를…
의사 M과의 교제가 만 4년에 이르고 있다. 모슬렘 국가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헝가리에 유학을 와서 의대를 졸업하고 헝가리 병원에서 의사로 일한지가 어느덧 20여 년이 가까이 오고 있어 이제는 자신의 나라의 문화나 전통이 오히려 낮이 설다는 그는 종종 우리 집을 방문하여 식탁교제를 할 때에는 아내가 해 주는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식탁으로 교제를 할 때에는 식사 전에 기도를 함께 하는데 그는 기도 전에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부탁한다. 특히 예원(리다아)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의사M을 위해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삼촌 M이 예수님을 알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곤 한다.

그는 종종 이슬람교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바를 비교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기독교에는 이슬람교 신앙에서 느낄 수 없는 기쁨과 자유함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나라인 A국에도 복음이 필요한데 언젠가 기회가 되어지면 함께 들어가 선교사역을 위해 자신이 도울 거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바라기는 의사 M이 속히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되심을 고백하는 날이 속히 올 수 있기를 오늘도 우리 가족은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다.

(의사 M 형제가 중동의 모슬렘국 출신이어서 그의 이름과 출신 나라는 영문 첫 자로 표기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