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선교 사역을 진행하면서 사역의 베이스가 있는 샤로스파탁 인근에 있는 헝가리 개혁교회 목회자들, 샤로스파탁 신학교 교직원들, 신학생 등 선교사역을 위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돕는 분들이 있다. 선교사역이 좀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분들의 도움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목회자도 아니고 신학생도 아닌 집시선교 사역의 또 다른 조력자가 있어 언급하고자 한다.

중동 A국 출신의 헝가리 병원 외과 의사 M, 내가 의사 M을 만나 것은 2004년 9월 경, 4년 전으로 올라간다. 헝가리에서 집시선교 사역을 시작한지 1년쯤 지났을 때,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는 중에 부주의하여 떨어져 오른 팔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가 나자마자 부러진 팔로 인근에 있는 S도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외국인인 신분이기에 먼저 신원 확인이 필요했고 이어서 병원에 접수를 마치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데 청바지차림의 젊은 한 청년이 들어오더니 자신이 수술을 집도할 의사라고 하면서 나의 부러진 팔을 보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부러진 팔에 대하여 불안감과 초조함 그리고 아픔을 참고 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는 수술을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수술실에서 수술을 위해 준비를 하던 중에 의사 M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의사 M은 내가 동양인이어서 그랬는지 몇 가지 질문을 해왔다. “어디에 살고 있느냐, 헝가리에서 하는 일은 무슨 일이냐? “ 등의 질문이었다. 그에게 ”나는 선교사로 집시 선교를 위해 한국 교회에서 왔다“라고 대답을 하자 이해를 못하는 듯하였다. 몇 가지의 질문을 마치자마자 마취를 시작하는 듯 하였는데 다음날 아침 새벽 오른 팔에 깁스를 한 모습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간밤에 마취를 하고 난 후에 곧 이어서 수술이 진행되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뜬 후에 한 두 시간이 흘렀는데 의사 M은 회진을 위해서 내가 있는 병실로 찾아와 간밤에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면서 “기분은 어떻느냐, 아프지는 않느냐” 등의 질문을 해왔다. 그리고는 수술부위 팔의 엑스레이 촬영을 해서 상태를 봐야 하니까 다시금 병원을 찾아달라고 하면서 한 주일 후에 만나자고 하고는 헤어졌다.

어느 한 간호사가 수술결과지와 고지서를 가져왔고 병원 측에 수술비를 납부하라고 해서 보니까 수술비가 약 90만원(U$ 900) 정도 되었다. 헝가리에서 나에게 의료보험 카드가 없어 생각보다 많이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좀 더 주의를 했더라면 이러한 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자책감, 주위 분들에게는 미안함 그리고 아픔 등 여러 감정 등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술비를 납부해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 가져오라고 했던 수술비가 조금 모자라 다시금 다른 분에게 부족분을 부탁하면서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 M이 내 곁을 지나더니 “수술비가 얼마나 나왔느냐?”하고 묻기에 약 U$ 900정도 나왔다고 하니까 “그 정도의 수술비에 만족하느냐?”라고 재차 묻기에 “생각보다 조금 많이 나온 것 같다”라고 대답을 하자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당신이 외국인이라서 많이 나온 것 같다”라고 하며 자신이 병원장에게 부탁해서 좀 수술비를 깎아보겠노라고 하였다. 병원장에게 가는 길에 의사 M은 “병원장에게 수술비를 한 30% 정도 깎아달라고 부탁을 할 계획”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의사 M은 나에게 밖에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병원장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더니 한 10여 분 병원장과 이야기를 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병원장의 방문이 열리면서 잠간 나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이 있어 병원장실로 들어갔는데 병원장은 안경을 쓴 60대의 여자 분으로 깐깐한 인상을 지닌 분이었다. 병원장은 나에게 짧은 인사말과 함께 “헝가리에 집시선교를 위해서 왔느냐, 한국 선교사인가? 등의 두어 마디의 질문을 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병원장은 ”의사 M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앞으로도 더욱 집시들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특별히 수술비를 깎아주겠노라고 하면서 경리실로 찾아가라고 하였다.

병원 경리실에 가서 내 이름을 밝히고 수술비를 내러 왔다고 하니까 경리실 직원이 나의 수술비가 15만원 (U$ 150)라고 하였다.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나의 수술비가 U$ 900에서 U$ 150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나는 먼저 경리실에 U$ 150의 금액을 내고서 의사 M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찾았다. 의사 M은 “당신이 헝가리 사람들조차도 외면하는 집시들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기에 병원장에게 설득하여 수술비를 깎을 수 있었다”라고 하며 자신은 중동 A국 출신으로 헝가리에서 의대를 나와 외과 의사로 10여 년째 헝가리의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의료보험 카드가 없는 나의 형편을 알고서는 언제든지 질병으로 인해서 문제가 생기면 주저하지 말로 자신을 찾아달라고 하였다. 또한 의사 M은 나에게 “우리는 아시아인으로 서로 도와야 하지 않으냐” 하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난 후에 한 주일이 지나고 나서 다시금 의사 M을 찾았다. 의사 M은 엑스레이로 내 팔의 수술부위를 찍어 필름을 살펴보더니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라고 약 5주 후에 깁스를 풀러 다시 오라고 하였다. 나는 의사 M에게 언제 시간이 나면 한 번 만나서 저녁이라도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사 M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저녁식사로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의사 M 역시 우리 가족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하여 손수 음식을 만들어 정성껏 우리를 대접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아시아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이후 의사 M과는 서로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정말 친 형제보다도 더욱 끈끈하게 관계를 발전하였다. 의사 M은 늘 나에게 의문이 하나 있었다. “인생이 그리 길지도 않은데 어찌하여 헝가리에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은 집시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의문을 갖고 있는 형제 M에게 “우리 역시 무가치한 존재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 은혜에 기인하여 선교사가 되었고 집시민족을 위해 헝가리에 오게 되었다”라고 대답을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하튼 형제 M은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자신을 찾아오는 집시 환자들을 위해서는 의사로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돕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의사 M에게 역시 “당신이 의사로서 환자를 볼 때에 정성을 다하여 대하는 것처럼 나 역시 집시들을 하나님께서 한 영혼으로 사랑하시는 모습으로 대하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고 하였다. 여하튼 의사 M은 집시환자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조금도 소홀함이 없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최 선교사로 인해서 집시민족에 대해서 더욱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 역시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겠노라하는 약속을 하였다.
(다음 편에서)

(의사 M 형제가 중동의 모슬렘국 출신이어서 그의 이름과 출신 나라는 영문 첫 자로 표기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