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랑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니다. 어린 애기가 ‘응에’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자기를 알리기를 시작합니다. 자기를 알리지 않으면 모두가 바쁘게 사느라고 사람들은 남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는 자기 PR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남에게 알릴 필요는 있습니다. 사실, 자기 자랑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못된 자기 자랑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를 그럴듯하게 자랑으로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말하다보면 사람들이 ‘나’를 굉장한 사람으로 알아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포장지가 벗겨지면 신뢰를 잃게 됩니다.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자기 심리학(Self Psychology)’에서 자기애는 정상적이며, 그 자체의 발달 과정을 갖고 있으며, 그는 이러한 자기애가 성숙화하고 형성되는 독특한 형태를 이론화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자기 자랑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인 것을 알게 됩니다. ‘부득불’ 자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출신도, 가문도,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삶도, 뛰어난 학문도 자랑꺼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은근히 자기 자랑이 배어 있는 여러 말들, 선교 하면서 당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박해까지도 겸손을 가장한 자기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지론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랑에 익숙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He who glories, let him glory in the LORD.’(고전 1:31)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자랑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나도 바울과는 비교가 되지는 않지만 ‘부득불’ 자랑하려고 하면 자랑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자랑하는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잘 아는 다른 사람이 나를 자랑해 주어야 참된 자랑이 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간증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대부분이 자기 자랑이 너무 지나칩니다. 자랑하는 자세가 사도 바울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바울의 경우를 보면, 결국에는 자기에 대한 자랑이 예수님에 대한 자랑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다는 것을’(고전 15:31) 자랑했습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된다’(고후 1:14)고 했습니다. 또한 ‘부득불 자랑할진데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고후 11:30)고 했습니다. 또한 ‘주의 환상과 계시를’(고후 12:1)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 6:14)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랑을 위한 자랑을 하면서 세상을 삽니다. 간증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약한 것을 빼고 자기 자랑만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울과 같이 우리의 약한 것을 들어내면서 예수님을 높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