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르네상스를 연 인물로 알려진 프랑스왕 루이12세(Louis XII)가 왕좌에 오르기 전에 그에게 많은 적들이 있었는데 그가 왕위에 오르자 그 적들은 신변에 위협과 함께 극도의 불안에 쌓였다고 합니다. 흘러 나오는 말에 의하면 왕은 자기를 반대하고 대립하던 모든 사람의 명단을 작성했다는 것이고 더욱이 그 명단의 이름 마다 왕이 직접 검은 색깔로 십자가를 일일이 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들이 들리자 어떤 이들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채 부랴 부랴 파리를 벗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간 이들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즉 임금은 적이었던 그들을 분명하게 용서했으며 목숨을 보장했다는 것인데 왕이 직접 그린 검은 십자가는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로 용서 받았으므로 자기도 과거의 원수를 한사람 한사람 모두 용서 한다는 의미로 검은 십자가를 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요셉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고 그로 인해 형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형들 모두가 자신에게 절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로인해 더욱 미움을 받다가 결국은 형들이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부모에게는 죽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요셉은 살던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팔려와서 한 장군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등 어려움을 겪은 후 젊은 나이에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가뭄을 대비해서 요셉은 곡식을 모아서 창고에 쌓게 하여 애굽은 가뭄이 왔을 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큰 가뭄으로 식량을 구하러 애굽까지 찾아온 형들을 보고서 그들에게 자신을 밝힌 후,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라는 사실에 놀라서 말을 못하는 형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자신을 죽이려 하였고,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내용은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략된 그 부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형들을 따르며 들에서 일하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러 갔다가 버림받은 요셉에게 배신과 버림받음이라는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죽이자는 말을 하던 형들이고, 자신을 노예로 팔아서 부모와도 생이별을 하고 남의 나라에 와서 고통의 세월을 살게 하였던 형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요셉도 어려울 때마다 그 분노와 미움은 더욱 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 가운데서 그런 경험들을 갖습니다. 배신의 아픔에 힘들어 합니다. 버림받음의 상처로 아파합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사람이 있을 때 미움과 복수의 감정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 미움과 분노는 절제하지 못하면 엄청난 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초라한 모습의 형들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요셉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들이 두려워 할 것을 염려하면서 안심시키려 하였습니다. 어떻게 요셉은 그럴 수가 있었을까 우리는 궁금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거듭 말하기를 자신이 노예가 되어서 애굽으로 팔려온 것은 하나님이 야곱의 온 가족과 그 후손들을 구하시려고 미리 요셉을 보내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요셉의 깨달음입니다. 그가 고난 후에 깨달은 것은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형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였을 뿐이므로 형들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은 성령으로 되어진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었을 마음의 상처도 하나님이 치유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 그것은 우리의 숙제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풀 수 없는 숙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주셔야 합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멋진 말을 했습니다. “용서는 제비 꽃이 자신을 밟는 발꿈치에 남기는 향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