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에 대하여서입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잘벌고, 공부를 많이 하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능력있다고 합니다. 좀더 근사한 정의는 영향력있는 사람, 말 한마디로 여러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능력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의 상징으로 미국의 대통령이나 또는 미국 굴지의 기업의 회장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능력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때부터입니다. 우리의 모든 가능성과 기대가 끝났을 때 이제 소망이 사라졌을 때 도무지 해결될 가능성이 없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끝이 바로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만이 온전히 영광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미 100세인 아브라함, 90세인 사라, 모든 가능성의 시간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 누구도 우연히 되었다거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셨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식 이삭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병들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도 일부러 바로 가지 않으시고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서야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냄새나는 시신을 향하여 명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계산과 인간의 능력이 이미 끝난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시작하여 완성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약할 때 곧 강함이라고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진정한 능력은 바로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때부터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때 3000명 5000명이 주님께 돌아오는 일에 쓰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의 계산이 아직 있는 한 우리가 아직 이렇게 하면 되겠다 저렇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되어질 때는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아무런 가능성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 포기는 없습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웃을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가 있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하였는데 해결되지 않은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도무지 소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문제가 있으십니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전능함을 신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가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진정한 능력은 바로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 옵니다. 우리의 무력함과 한계 속에서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입히우기를 기다릴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능력의 한계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진정 능력있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