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상담가이자 스몰리 관계센터의 설립자인 게리 스몰리가 한번은 리더쉽 세미나를 주최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내노라하는 회사의 중역들이 참석하여 인간관계에 대한 강의를 청종하고 있었습니다. 단상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던 스몰리는 한쪽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바이올린을 집어들더니 청중을 향해 이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이 바이올린이 여러분 생각에 얼마의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까?” 청중들의 눈에 들어온 그 바이올린은 목 부분이 부러져 볼품이 없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몇 십 불 할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스몰리의 이어지는 말을 듣던 청중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후하게 쳐서 몇 십 불이라고 했는데 스몰리는 이 바이올린이 적어도 백만불을 웃도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바이올린 안 쪽에 새겨져 있는 글귀를 읽어줌으로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1723년,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우스” 그 바이올린은 최고의 장인으로 손꼽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작품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DNA는 워낙 정교하고 신비스러워서 DNA야말로 하나님의 인간창조 설계도이다라고 어느 과학자가 말할만큼, 인간은 그렇게 “신묘막측”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손 끝이 닿은 흔적이 사람의 몸 구석구석에 그렇게 남아있는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렇게까지 선언해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이사야49:16).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며 지으신 인간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 돌보시는 것을 그렇게 묘사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비록 구겨지긴 했었지만 예수님의 보배 피로 거듭나고 새롭게 되었기에, 그리고 우리 (교회)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기에 우리는 그 분께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 바닥에 새겨 넣을만큼 귀하게 여기시는 우리를 우리들도 그렇게 귀하게 여기고 잘 돌봐야 합니다. 각자가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하고 남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그 분의 “성체”를 대하듯 그렇게 조심하고 귀하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일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드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마18:6). 실족시키지 말라는 말씀을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하신 것입니다. 실족시키지 말라는 헬라어 단어에는 “가는 길에 돌맹이를 두어 걸려 넘어지게 하지 말라” “당연히 복종하고 신뢰해야 할 사람에게 불복종하게 하고 불신하도록 영향을 끼치지 말라” “죄 짓게 하지 말라”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 한 사람의 잘못때문에 다른 사람이 주님을 멀리 떠나게 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용하는 단어도 정선해서 사용하고 마음도 곱게 쓰며 행동에는 무례함이나 이기심이 없어야 합니다. 허물은 덮어주고 부족한 점은 채워주고 넘어졌으면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 일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그렇게 허물과 부족한 것 투성이고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 바닥에 새겨넣을만큼 보배롭고 존귀한 우리 자신과 타인을 우리들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대하는 질서와 예의와 정서가 날마다 회복되어 가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