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국의 TV 광고에서 영화배우 박노식 씨가 자전거에 아들을 태우고 가면서 이런 대사를 한 것이 문득 떠오른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광고 대사 가운데 <건강>이라는 단어가 유독 마음에 각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마 16장 18절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렇게 시작된 교회가 현재 이 세상에는 몇 개나 될까? 그리고 그 교회 가운데 예수님이 세우시고 싶으셨던 <예수님의 건강한 교회>는 지금 몇 개나 될까? 그리고 내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는 그 예수님의 건강한 교회에 과연 근접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인도의 간디는 기독교 국가인 영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후에 말하기를 “예수님은 좋다. 그러나 기독교는 싫다”고 했다. 또한 오늘날 미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교회 앞에 이런 현수막을 내 걸기도 한다. "예수님은 좋다. 그러나 교회는 싫다"

오늘날 세상에는 이렇게 예수님은 믿지만 기독교와 교회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기성 기독교 교인들이 그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이 그렇게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바탕에는 오늘 기독교와 교회가 마음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하는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 그런데 교회는 더 엄청난 일을 했다. 예수님이 만드신 그 포도주를 다시 물로 바꾸었다."라고 말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를 책망했다. 이 말을 받아 어떤 신학자는 "현대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포도주를 담았던 항아리마저 깨버렸다. 그래서 그 깨어진 항아리 조각들로 서로를 찌르고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오늘을 바라보면 교회가 깨뜨린 그 복음의 항아리 조각에 세상 이곳 저곳 교회들마다 교인과 목회자들이 찔려서 신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교회가 깨뜨린 복음의 항아리 조각들이 세상의 젊은이들과 불신자들의 마음 구석구석을 찔러서 기독교와 교회를 등지고 돌아서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우시고 싶으셨던 <예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과 은혜와 용서와 기쁨과 감사와 헌신과 겸손과 나눔이 가득한 <건강한 교회>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건강한 교회에서 넘쳐나는 건강한 복음을 세상에도 나누어주어 이 세상에서 상처입고 신음하는 젊은이와 불신자를 구원해야 하는 교회가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나는 오늘날 교회를 바라보면 <건강>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고, 마음에 각인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교회는 성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중요한 초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무디'지에서 현대 교회를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10가지 요소를 아래와 같이 발표한 적이 있다.

①교회 내 특정 교인의 요구 사항에만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라
②교회 안에 떠도는 모든 소문과 비평을 다 귀담아 들어라
③목회자의 약점만 찾아내 이야기하라
④사랑 안에서 결코 참된 것을 말하지 말라
⑤불평 불만의 씨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라
⑥남을 용서하되 가려가면서 용서하라
⑦자신의 죄는 덮어두고 위선으로 가장하라
⑧공중기도 시간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불만을 다 토해내라
⑨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항상 이기기에 힘써라
⑩하나님이 당신에게 교회를 분열시키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고 행하라.

오늘 미국 서북미에서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써 이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드리면서 오늘 모든 교회가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들이 깊이 묵상하고 반성하여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때 건강한 교회를 꿈꾸셨고 원하셨던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기독교와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이 좋다. 그리고 기독교도 좋고, 교회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