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월 북한 인권법이 재정된 후 미국에 망명한 탈북자들은 43명이다. 그 중 시애틀에 탈북자들이 정착하는 것은 한 씨 가족이 처음이다. 이들을 미국까지 안전하게 인도한 윤요한 목사는 "한인 교회들의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느 탈북자와 마찬가지로 한 씨 가족 역시 미국 땅을 밟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처음 탈북을 시도한 후 10년동안 고향과 타지를 오가며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고, 언제 어디서 잡혀 죽을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내 집'이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는 한송화 씨의 말은 그동안 이들이 얼마나 부유(浮游)하며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 씨 가족이 함경북도 무산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북한 사람들이 홍수와 돌림병으로 떼죽음을 당하던 1998년이다. 그 때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지천이라 옆에서 누가 죽어도 눈하나 깜짝 안할만큼 죽음에 대한 감각도 무뎌질 때였다.

1998년 탈북한 후 4번이나 붙잡혀 중국과 북한을 오갔다. 중국에서 윤요한 목사를 만난 건 2003년이었다. 윤 목사의 도움으로 진희, 은혜 양은 교회에서 자랐고, 한 씨 가족은 중국서 생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윤 목사와 함께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윤 목사는 15개월 간 길림성 교도소에 수감되고 한 씨 가족은 또 다시 북한으로 추방됐다. 2006년 8월 석방된 윤요한 목사는 이들을 자유의 땅으로 부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세 사람이 안전하게 미국까지 건너올 수 있도록 돈을 지불한 것은 물론, 미국 정부에도 '세 사람이 미국에 정착할 수 있게 책임지겠다'는 문서에 싸인했다.

한 씨 가족은 시카고에서 난민 입국 수속을 마쳤다. 미 정부는 한 달 생활비로 1200불을 지급했다. 미 정부의 도움은 여기까지다. 난민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 찾기, 소셜국 등록, 운전 면허증 따기, 일자리 찾기 등 부터 영주권 신청까지 윤 목사가 도맡아야 한다. 윤요한 목사는 한인 교회가 이 일에 함께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사회 보장 제도가 잘 되어있어서 정부 프로그램으로 살 수 있습니다. 혜택을 줄 수 있는 기관도 많고요. 하지만 한인 교회가 나서서 이들이 건강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미있지 않겠습니까? 한 교회가 전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많은 교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적, 실질적으로 도울 수 없는 교회들은 간증 집회를 열어 보다 많은 한인들이 북한 실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도 좋습니다."

윤 목사는 "북한 동포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직접 들어가서 도와주는 만큼의 사랑을 탈북자들에게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한송화 씨, 조진희 양, 조은혜 양은 윤 목사가 미리 구해놓은 린우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시애틀 도착 후 타코마삼일교회, 타코마연합장로교회, 올림피아한인장로교회, 타코마동산교회 등 한인 교회에서 간증 집회를 가졌다. 앞으로 한 씨와 성희 양은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민희 양은 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한편 한 씨 가족의 간증집회는 ▲4월 9일 시애틀큰사랑교회(담임 변인복 목사) ▲4월 13일 시애틀축복교회 ▲4월 20일 명성장로교회(담임 김원일 목사) ▲5월 7일 올림피아중앙장로교회(담임 황인철 목사) ▲5월 11일 베다니교회(담임 최창효 목사) ▲5월 21일 브레머튼장로교회(담임 박근범 목사)에서 계속된다.

이들의 집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교회는 윤요한 목사(206-354-6019)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