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지나지 않았을 당시, 4.19와 5.16으로 한국은 한참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데모판에 나간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열정을 보았고,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나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전하자고 다짐했던 선교사가 있었다. '오대원'이라는 한국 이름이 더 유명한 데이빗 로스 목사였다.

남장로교 선교사로서 한국 땅을 밟아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다녔던 오 목사는 10여년이 지난 후 국제 예수전도단과 연을 맺고 한국에서 예수전도단을 시작했다. 한국 예수전도단의 설립자로,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자로, 「북한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두려움의 집에서 사랑의 집으로」 등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지금도 전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은퇴할 나이를 넘은지 오래지만 아직도 젊은이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엘렌 사모 덕이다.

엘렌 사모는 대학 시절부터 오 목사의 동반자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오 목사와 함께 한국에 건너올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 땅을, 그리고 그곳의 젊은이를 사랑하고 있다.

"대학에서 유학생들을 통해 동양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교단 선교사로 선교지를 정해야 할 때 대만과 한국을 놓고 기도하게 됐죠. 그 때 전세계 언론을 통해 4.19가 보도됐어요. 한국 젊은이들의 열정과 정의감을 보게 됐죠.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수님 모르고 사는건 재미 없잖아요?"

당시 가난하고 혼란스러워보이는 한국이었지만,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고, 한국인의 열려있는 마음과 따뜻한 사랑을 경험했다. 하루 8시간씩 꼬박 2년간 한국어를 붙들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25년간 한국에서 청년들과 그들의 부모를 전도했다. 함께 전도하고 오 목사가 가르치면 뒤에서 상담하는 사역을 주로 해왔다. 아이 육아를 맡다보니 시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상담'으로 자연스레 분야를 옮기게 된 것이다.

"오 목사님은 내가 사역하는 것을 즐거워하세요. 더러는 교육도 맡아 하지만 지금껏 해와서 그런지 저는 1:1상담이 더 편안합니다. 이번에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짧게 세미나를 인도해봤습니다. '묵상'에 대해 전했는데, 이런 시간을 갖고 보니 더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네요. 이러다가 앞으로 세미나 강사로 나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웃으며 던지는 말이지만 평생의 반 이상을 목사 옆에서 사역해 온 그이기에 '준비된 강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나의 첫번째 사역은 목사님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함께 복음의 길을 걷는 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최우선 과제다.

"사모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사랑으로 남편을 격려하고 기도로 그를 돕는 일이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또 남편을 믿고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모가 흔들리지 않고 뒷받침 해줄 수 있는 근간은 남편의 사랑이다. 그래서 엘렌 사모는 남편들에게 "아내들을 사랑하고, 격려하라"고 조언한다.

"남편의 위로와 사랑이 큰 힘이 됩니다. 한쪽에서만 계속 희생한다는 것은 힘들죠. 섬기는 아내의 손을 붙잡아 줄 사람은 남편입니다. 그 손을 잡고 부인을 사역케 해야죠. 위로받지 못하면 힘을 잃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계속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목사님의 격려와 인정 덕분입니다."

이어 그녀는 집안의 '보이지 않는 기둥'인 여성들에게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라"고 당부했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개인의 변화가 없는 뒷바라지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눈에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여성들에게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갖는거죠. 누구나 '만족'을 구합니다. 결혼한 여성들은 대게 상대방, 또는 자녀들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고 하죠. 하지만 그렇게해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내면이 채워지면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도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사랑이 넘치면 가족에게도 성숙한 사랑을 베풀 수 있죠."

14년 전 시애틀로 건너온 그녀는 이곳에서 선교훈련센터 '성령의샘'을 짓는 한편 '조선연구소' 사역에 몰두하고 있다. 훈련센터 건축은 올해로 5년째다. 헌금을 받아 건축되고 있는 터라 진행이 더디지만 올 안에는 건축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선교훈련생들을 위한 성령의샘에서는 DTS, 성경학교, 상담학교, 선교 세미나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조선연구소'는 북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북한 역사, 현대사, 사고 방식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북한 선교는 1975년부터 기도하면서 비전을 받은 것이다.

"사역을 위해 많이 다녀야 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어디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면 목사님과 함께 갈 것"이라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동행'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