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파사데나 평강교회 송금관 목사
(Photo : 사우스파사데나 평강교회 송금관 목사)

지난 2023년, 텍사스 오스틴의 한 교회에서 인공지능이 설교를 작성하고 설교자가 그것을 읽는 실험이 있었다. 놀랍게도 참석자들의 다수는 그 설교가 "꽤 괜찮았다"고 평가했다. 핀란드의 헬싱키에 있는 루터란 교회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있었다. AI가 설교, 찬양, 시각 자료, 목회자 아바타까지 제작한 예배를 진행했는데, 약 120명이 참석하는 등 관심을 끌었지만, “멀게 느껴지고 따스함이 부족했다”는 반응이었다.

AI가 수천 편의 설교를 분석하고, 신학적 용어를 사용하며, 정서적 언어까지 구사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묻기 시작한다. "AI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다면, 인간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은 기술의 발전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도구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성경은 인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이 구절은 기독교 인간관의 근본이다.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유기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히. צֶלֶם, tselem)으로 지음 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단순히 외형이나 기능이 아닌, 다음과 같은 영적·도덕적·관계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성: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
이성: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녔다.
도덕성: 선을 추구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윤리적 능력이 있다.
관계성: 하나님, 타인, 자연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존재다.

이 모든 요소는 생명, 영혼, 사랑, 책임, 예배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기계나 프로그램으로는 결코 모방될 수 없는 것들이다.

AI는 기계 학습과 데이터 기반의 판단, 모방과 예측을 통해 인간처럼 ‘생각’하고 ‘반응’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AI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없다.
의식(Consciousness) – AI는 자아 인식이 없다. 스스로 존재를 인식하거나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의지(Will) – AI는 선택을 ‘하듯’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의 결과일 뿐, 스스로의 도덕적 결단이 없다.
영혼(Soul) – AI는 감정과 정서를 흉내 낼 수 있지만, 진정한 공감이나 용서를 할 수 없다.

또한, AI는 ‘유사 인간’은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AI는 기억할 수는 있지만, 용서할 수 없고
AI는 계산할 수는 있지만, 기도할 수 없으며
AI는 모방할 수는 있지만, 사랑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형상’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일까?

이 시대는 인간을 점점 더 기능적 존재로 축소시키려 한다. 학습능력, 생산성, 효율성, 창의성 등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비교한다. 이는 곧 "AI가 더 낫다면 대체해도 된다"는 인식이 은연 중에 우리의 잠재의식에 퍼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4)
인간은 유용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기능으로 존재 가치를 정하는 순간, 약자와 노약자, 장애인은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형상’이라는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을 사랑과 존엄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해 준다.

따라서 교회는 AI에 대한 개념 정리를 너무도 분명히 할 수 있다.
첫째, AI는 설교를 대체할 수 없다. 설교는 정보전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살아 있는 인격의 고백이다.
둘째, AI는 상담을 대체할 수 없다. 진정한 상담은 ‘들음’이 아니라 ‘같이 공감함’이며, 성령의 임재 가운데 치유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셋째, AI는 교회를 대체할 수 없다. 교회는 공동체이며, 성도의 교제와 성찬, 회개의 고백과 말씀의 생명이 함께하는 자리이다.
넷째, AI 시대일수록 ‘사람’이 중요해진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사람의 진실한 마음, 기도,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술은 인간의 창조 능력을 반영하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일부이다. 따라서 AI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사용해야 할 도구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의 형상을 높이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우리를 닮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닮아야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AI는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AI보다 먼저, 하나님을 닮은 존재라는 사실을… .

“주여, 제가 만든 것보다 저를 지으신 당신을 더 닮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