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상호 관세가 부과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에 경쟁국들에 비해 크게 불리하지 않은 선에서 타결됐다는 점에서 정부와 대통령실 모두 만족하는 분위기나 전문가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한 수준으로 평가해 온도 차이가 있다.
정부 통상 대표단이 협상 성과로 발표한 미국과의 상호 관세 15%는 예상했던 수준이다. 무엇보다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걷어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단이 쌀과 소고기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과는 달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을 포함한 미국 제품을 수용해 무역을 완전히 개방(completely open)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등 양국의 견해가 엇갈리는 건 향후 더 큰 혼란을 초래할 불안한 요소다. 어느 쪽 얘기가 맞는지는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유독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따로 있다.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도 수입하기로 한 점이다. 이는 미국의 거센 농축산물 개방 압력을 피하는 대신 미국 측이 제시한 요구를 우리 측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의 합의다. 우리 돈 487조 원이란 천문학적인 금액을 미국에 투자하는데 그중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조건이면 그건 투자가 아니라 통 큰 기부가 아닌가. 그래도 쌀과 소고기를 지켰으니 잘한 거라고 자화자찬하는 게 맞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논란이 일자 정부와 대통령실은 일본 5500달러, EU 6000억 달러와 비교해 우리는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니 그래도 선방한 것이란 반응이다. 하지만 일본이 GDP 대비 13%, EU GDP 대비 6.9%에 비해 한국은 무려 20.4%에 달하는 규모다. 상대적으로 과도한 대미 투자 규모를 약속하고 이를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하면서 잘했다고 하고 있으니 국민을 초등학생 취급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 등 상호 관세 15%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때 미국과 FTA를 체결해 무관세 혜택을 받았다. 일본과 EU 모두 2.5%의 관세를 적용받는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들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2.5%나 더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게 된 거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로서는 15% 관세 그 자체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FTA 체결로 무관세 혜택을 누리다 갑자기 15%의 관세를 물게 되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자동차의 경우 일본 EU와 같은 15% 관세라도 이들 나라가 기존 2.5% 관세를 물었던 걸 감안하면 한국 기업들이 받는 타격이 훨씬 크다.
우리 통상 협상단은 미국 측의 소고기 시장 개방 압력에 대비해 지난 광우병 파동 때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의 대규모 시위 장면 사진 등을 미국 측에 보여줬다고 한다. 이 정도로 한국민에 민감한 분야이니 수용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였을 것이다. 그 대신 GDP에 20%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미국에 주기로 합의한 건 과연 옳은 선택일까.
이재명 정부가 특히 미국의 소고기 시장 개방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건 17년 전 온 나라를 휩쓴 광우병 파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사실상 지금의 여당인 민주당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 여배우가 단상에 올라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넣는 편이 낫겠다"고 한 말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당시 좌파진영은 광우병과 관련한 온갖 괴담을 퍼뜨리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노무현 정부에서 보수 정권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한미FTA를 체결하려 하자 괴담과 선동을 정치적 무기로 삼았던 거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오늘 그날의 괴담은 우스갯소리로 남았다. 17년 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려 좀비같이 된다는 선동이 오늘까지 먹혀들었다면 국내 시장에서 미국산 소고기는 벌써 퇴출 신세가 됐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소고기만큼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수입품목도 드물다. 수입액이 2024년 기준 22.5억 달러일 정도로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소고기 시장 완전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FTA 협정에서 제외했던 30개월령 이상 소고기까지 완전히 풀라는 거다,
사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나 그 이하 소고기나 과학적으로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30개월령 이상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는 주장 또한 생리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지금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제외하고 자유 민주국가 중에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을 금지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게 증거다.
광우병 소고기 괴담은 17년 전 좌파진영이 보수 정부를 공격하기 아주 좋은 정치적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민주당 정부의 발목을 잡는 셈이 됐다. 정부 협상단이 광우병 시위 사진까지 들고 가서 소고기 수입을 틀어박은 건 17년 전 선동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일 것이나 그로 인해 져야 짐이 엉뚱하게 기업과 미래 세대들에게 돌아가는 게 문제다.
광우병 소고기 파동은 한국 사회에 씻을 수 없는 흑역사로 기록됐다. 그것 때문에 미국에 487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안긴 이재명 정부로서도 그날의 괴담과 선동에 대한 청구서가 미국 관세 협상에서 날아들지는 차마 상상도 못 했을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