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아이들을 키우면서 성경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워짐을 자주 느낀다. 오래전, 큰딸이 두 살 반쯤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당시 나는 부목사로서 심방과 제자 훈련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집으로 들어가면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나를 기다리던 딸이 먼저 달려 나와 내 품에 안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퇴근길에 딸이 좋아하는 과자를 한 봉지씩 사 가기 시작했다.
[2] 이 작은 습관이 반복되면서 문제가 하나 생겨났다. 과자가 일상이 되자 아빠를 향한 딸의 태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 얼굴을 보며 웃고 품에 안기던 딸이, 이제는 내 손에 들린 과자부터 먼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딸은 사랑하는 아빠보다 아빠가 들고 오는 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잘못된 버릇을 들일까 걱정되어, 이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만 사서 집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3]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딸의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때마다 응답해 주시고 선물을 주시면, 정작 하나님보다 그분이 주시는 선물에 더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 인간의 연약한 본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며칠 전, 한 사건을 통해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 일이 있었다. 내게는 딸 둘 아들 둘, 총 네 명의 자녀가 있는데, 셋은 미국에 있고 둘째 딸만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4] 곁에 한 명이라도 있으니 큰 위로가 된다. 딸이 있으니, 예전처럼 집에 들어올 때면 종종 딸이 좋아할 만한 간식이나 음식을 사 오곤 한다. 시장이든 마트든 식당이든, 당연히 딸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 걸 사 온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사 온 것들을 딸이 손대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얼마 전, 마트에서 ‘오징어 전기구이’를 사 와서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딸 방에 조용히 갖다 놓았다.
[5] 밤늦게 딸이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심심하면 내가 사 온 것을 맛있게 먹으리라 생각했다. 그 딸이 방학을 맞아 언니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한 주 방문한다고 그저께 미국으로 떠났다. 딸이 떠난 후인 어제 낮에, 부엌에 들어갔다가 내가 사다 놓은 오징어 전기구이가 거기 놓여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어찌 된 거냐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딸이 오징어 전기구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몰랐느냐고 했다.
[6]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값싼 간식이지만, 딸을 향한 아빠의 마음이 담겨 있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딸은 그런 아빠의 마음도 모른 채 그것을 부엌에 내놓은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포장을 뜯어 아내와 함께 나눠 먹었다. 입으로는 맛있었으나, 마음은 씁쓸했다. 딸을 향한 내 마음을 질겅질겅 씹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아내가 한마디 했다. “진짜 딸을 사랑한다면, 딸이 좋아하는 걸 알고 사줬어야지.” 맞는 말이었다.
[7]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딸도 좋아할 거라 착각했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딸의 기호와 마음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그 일을 통해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우리가 에써 온 것들이 있다. 매사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왔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것들이 꽤 많았을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8] 성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열심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열심의 결말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열심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내 모습은 그들과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9] 자녀를 키우며 깨닫는 소소한 일상이 때로는 깊은 신앙의 진리를 일깨워 준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분의 뜻이 아닌 내 기준대로 섬기려 했던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본다. 딸을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을 정확히 읽지 못했던 것처럼, 나 역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살았던 것은 아닌지. 자녀를 통해 배우는 이 깨달음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고 바르게 섬기는 삶으로 인도해 주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