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상담을 했고 저녁에는 신학교에서 세 시간이 넘게 강의를 했다. 너무나 힘든 하루였다. 저녁 11시가 다 돼서 집으로 향했는데, 나는 이렇게 기대했다. “아이들은 지금 이 시간 정도면 분명히 잠이 들었을 거야. 집에 도착해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인터넷으로 신문도 읽고 이메일도 체크하고,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차를 마셔야지….” 하나님도 나의 피곤을 아시니까 나에게 휴식을 주시리라 기대했다.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고, 내게는 쉴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내 꿈(?)은 완전히 깨어졌다. 두 아이는 잠은커녕 내가 들어오자 마자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분노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녀석을 붙잡아 놓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너, 아빠가 오늘 얼마나 피곤하게 일했는지 아니? 아빠가 얼마나 지쳤는지 알아? 내가 제일 하기 싫은 일은 바로 너희하고 씨름하는거야. 오빠인 네가 동생을 잘 돌볼 수는 없니? 네가 알아서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어? 제발 아빠를 좀 이해해주라. 그냥 내버려두라”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날 따라 그런 분노가 가득 찬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 아들녀석을 불러놓고 불만과 불평을 들어줬다. 그는 동생이 자신 삶을 망쳐놓는다고 말하면서 그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I am so mad” 하며 울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제 1학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벌써 마음에 분노를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 새로운 사명감이 나를 붙들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아들 마음을 보여 주셨다. 아들이 자기 동생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다.. 이 순간은 분명 아들과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 이상이고, 하나님께서 내 아들을 만지기 원하시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 뜻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내 자신 필요와 열망을 따를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 피곤에 지쳐서 집에 들어왔을 때, 아들의 화난 모습을 보면서, 아들과 또 부딪혀야 하는 시간이 처음에는 분노와 짜증으로 여겨졌지만, 사실 그 시간은 사랑의 하나님이 계획하신 놀라운 섬김의 기회였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은 우리 아들뿐 아니라 목사인 나 자신도 변화시키기 위해 일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날밤 내 이기심과 교만 사이에서 내 안에 살아있는 우상이 여지없이 들어났다.

밤이 늦은 시간에 아들과 이야기하면서, 우리 자녀가 부모와 대화 하려고 하지 않고, 아예 단절된 것은, 자녀 문제가 아니라, 바로 부모인 우리 이기심과 교만,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우상 때문이란 것을 하나님은 깨닫게 하셨다. 이것이 무엇보다 부모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와 대화를 단절시키는 큰 벽인 것이었다.

우리가 때때로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우리 자녀가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가 뭔가 큰 잘못을 했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자녀에게 화를 낼 때, 우리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녀가 부모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을 빼앗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면, 훌륭한 아들을 둔 신앙 좋은 아버지라는 평판, 아들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경심, 아들이 크고 나면 얻게 되리라고 기대한 가정의 편안함….이런 류의 것이 깨졌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상담가인 제 경험으로 보면, 부모가 자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잘못된 행동과 잘못된 마음 자세를 깨닫고 고백하고 돌아서면, 그 결과 자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자녀와 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부모가 자녀를 정말 사랑하고 그들을 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바라봐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부부 안의 관계, 우리 가정 문제를 솔직하게 눈을 부릅뜨고 바라봐야 한다. 겸손함을 가지고 변화고자 하는 부모라면 자신이 하나님 도구로 쓰임 받는 일에 헌신할 수 있을 것이다.

손철우 목사 (남가주청소년비전센터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