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렬 교수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이장렬 교수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이장렬 교수는 서울대학교(B.M.)를 졸업하고 서든침례신학대학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 Div.를, 영국 에딘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 신약학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2010년부터 캔자스시티에 소재한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교수로 다양한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Ph.D. 논문을 지도하고 있다.

<Christological Rereading of the Shema in Mark's Gospel>, <바디매오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편집자 주)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여, 기독일보는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주제로 한 일련의 묵상 나눔 시리즈를 기획하고, 지난 해 '성탄 묵상'과 '송구영신 묵상'으로 많은 독자들의 호응이 있었으며, 이에 부응해 사순절 기간동안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을 총 7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한다. 
 

주의 만찬이 주는 교훈: 의식적으로 기억하기


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22:19-20


 19.     그리고 예수께서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해 나를 기념하라." (저자 주①)

20.     빵을 잡수신 후 예수께서 마찬가지로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저자 해설 및 묵상>


오늘 나눌 묵상은 부분적으로 언급 또는 암시된 '기억하기'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주의적이며 자기 공로 중심적인, 바리새파적 노력을 정죄하지만, 그렇다고 노력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여러 가르침에서 강조하셨습니다.

마 16: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빵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고 몇 바구니나 모았는지 기억나지 않느냐?
막 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눅 17:32     롯의 아내를 기억해 보라!
요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높지 않다'고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했으니 너희도 핍박할 것이요, 사람들이 내 말을 지켰으니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계 3:3     그러므로 너는 어떻게 받고 들었는지 기억해 순종하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이니 내가 어느 때 네게 올지 네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혹은 누구를 기억한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전제합니다. 주님께서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는 데 있어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약 서신서 저자들 역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억하라'고 강조합니다. 서신서 저자들은 "너희가 이제 성령을 모셨으니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노력도 하지 말고 그냥 지내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영의 내주를 경험하고 있는 공동체들에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도록 매우 분명한 도전과 격려를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엡 2:11       그러므로 기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육신적으로는 이방 사람들이었고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딤후 2:8       내가 복음을 통해 전한 바와 같이 다윗의 자손으로 나시고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여라.
히 10:32       여러분은 빛을 받은 후에 고난 가운데 큰 싸움을 이겨 낸 지난날들을 기억하십시오.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대로, 신약성경 곳곳에서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면서도 "이것을 행해 나를 기념(기억)하라(19절)"고 말씀하십니다.(저자 주②) 

이스라엘의 탄생을 축하하는 유월절을 예수님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했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했던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에 대한 매우 의미심장한 암시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암시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우리는 "이것을 행해 나를 기념(기억)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주목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기념 혹은 기억하는 일은 의식적이고도 지속적인(conscious and continual) 노력을 전제하지만, 특히 눅22:19에서 "기념(기억)하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현재형 동사ποιεῖτε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지속적으로 기억하라는 뜻입니다.(저자 주③) 

예수님께서는 주의 만찬을 한 번 행하거나 비정기적으로 이따금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행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의식적이고 지속적으로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이루신 일을 기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적 기억상실증이 얼마나 쉽게 재발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빨리 주의산만 해지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기억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정신없이 바쁘다는 것을 은근히 남에게 자랑하며, 그것이 마치 성공의 척도인 양 심하게 착각하고 있는 우리에게, 실로 "이것을 행해 나를 기념(기억)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절실하고 요긴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의 만찬이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완성,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지속되어야 함을 언급합니다(고전 11:26).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만유를 회복하시고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주의가 너무나 쉽게 산만 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정기적 주의 만찬 시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집중하도록 돕는 귀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저자 주④)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의 만찬을 정기적으로 행하고 또 그 의미를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주의 만찬의 지속적인 시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명하신 바입니다. 주의 만찬은 우리들로 하여금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케 해주며, 우리 삶이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 집중하도록 도와줍니다.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부단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 삶의 뿌리이시고 우리 존재의 근거시며, 우리 신뢰의 대상이고, 우리의 유일한 소망임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쉽게 각자 처한 상황이나 시급한 필요들에 관심을 빼앗겨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에 '기억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의 '시급한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이루어 주신 그 일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생각하고 느끼고 결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 우리가 당면한 도전과 문제들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더 크게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주의 결핍증과 영적 기억상실증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매일 예수님께 주목하고 순간마다 주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행해 나를 기념(기억)하라!"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한 줄 기도>

신앙생활에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알게 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날 위해 이루신 그 일을 지속적으로 기억하게 하소서.

편집자 주) 본 묵상 내용은 이장렬,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40일간의 묵상』(요단출판사, 2019)에서 발췌하여 개정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요단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얻어 사용합니다. 이 책에 대한 추가 정보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mall.godpeople.com/?G=9788935017379

 

(저자 주①) 고전 11:24-25을 함께 보라. 바울은 '기억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빵과 포도주에 대해 각각 언급한다. 누가는 이를 빵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지만(눅22:19), 19절과 20절은 서로 분리해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크게 하나로 통합해서 봐야 하기에 '기억하라'는 명령이 배타적으로 '빵'에만 적용된다고 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해석이다. 더욱이 누가의 주의 만찬 구절에서 빵과 포도주는 결국 총체적으로(collectively)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상징하기에 누가가 '기억하라'는 명령을 '빵'에 대해서만 기록한 것에 근거하여 주의 만찬에 관한 누가신학과 바울신학의 차이점을 논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지나친 해석일 것이다.

(저자 주②)  "이것을 행해 나를 기념하라"(19절)는 헬라어로τοῦτο ποιεῖτε εἰς τὴν ἐμὴν ἀνάμνησιν인데, 이는 "이것을 행해 나를 기억하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명사ἀνάμνησις는 기억, 회상, 기념 등의 뜻을 가질 수 있다.

(저자 주③)  헬라어에서 현재형 동사는 기본적으로 지속(continuity)의 뜻(aspect)을 갖고 있다. 고전 11:23-26에 있는 주의 만찬 제정 구절에서도 동일한 현재형 동사가 쓰였다(24, 25절). 마태와 마가의 주의 만찬 병행구절에는 '기억하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저자 주④)  고전 11:26에 따르면,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하나의 선포 양식이다. 주의 만찬은 복음의 극화(dramatized)된 표현이요, 시연(display)이다.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