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송구영신 묵상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송구영신 묵상

이장렬 교수는 서울대학교(B.M.)를 졸업하고 서든침례신학대학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 Div.를, 영국 에딘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 신약학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2010년부터 캔자스시티에 소재한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교수로 다양한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Ph.D. 논문을 지도하고 있다. <Christological Rereading of the Shema in Mark's Gospel>, <바디매오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송구영신 묵상 (2) [2023년 12월 29일 금요일] 참된 진보를 이루는 새해 

 

[2023년 12월 26일 화요일] 기적보다 더 큰 기적

 

오늘의 말씀: 요한복음 21장 9-11절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해설 및 묵상>

예수님은 부활 이후에도 제자들을 거듭 찾아 주시는 은혜의 주님이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미 두 번 대면한 베드로와 동료들(요20장)은 함께 철야 고기잡이 작업에 나선다. 그러나 헛수고의 경험만 남는 듯했다. 밤새 허탕만 쳤으니 말이다. 고된 작업을 통해 얻은 것은 빈 그물과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마치 어디로 피해야 할지 미리 아는 것처럼 그곳의 물고기가 다 사라져 버렸다. 밤샘 작업을 한 후 찾아오는 피로에다 물고기도 한 마리 잡지 못한 허탈감에 제자들의 고단함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미 디베랴 바닷가 제자들 곁에 와 계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적적 포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요한)은 그제야 바닷가에 서서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 명하신 분이 주님인 줄 깨닫고 이 사실을 베드로에게 일러준다(요21:7). 열정과 특심이 남다른 베드로는 예수님을 빨리 뵙고 싶은 맘에 서둘러 겉옷을 두른 후, 동료들과 포획한 물고기들을 모두 뒤로 한 채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뭍으로 올라온 제자들은 주님이 아침 식사를 위해 미리 피워 놓은 숯불을 발견하고 감격했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찾아와 주셨을 뿐 아니라 직접 조반을 준비해 놓으셨다. 이날 아침 메뉴는 생선과 떡이다. 조금 전까지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공허함과 허탈감에 짓눌려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잔치다!

주님께서 이미 생선과 떡을 준비해 놓으셨는데다가(요 21:9) 이제 막 기적적으로 포획한 큰 생선들을 가져오라고 하신다(요 21:10). 그 말씀을 듣고 이번에도 베드로가 선수를 친다. 고기 잡는 일에도 앞장섰고, 주님을 알아본 후 단 1초라도 빨리 뵈려고 물속에 바로 몸을 던진 그 베드로 말이다. 베드로는 큰 물고기들로 가득한 그물을 뭍으로 옮긴다. 그리고는 너무 신기했는지 한 마리씩 세어본다. "하나, 둘, 셋, ... 열, 스물, 서른..., 백, ... 헉!" 모두 153마리나 된다. 그것도 큰놈들로만 말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밤새 작은놈 하나 없었는데, 주님 말씀 따라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가 그것도 큰놈들로만 한 번에 걸려들었다!

정말 주님 없이 제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 한편 주님과 함께하면 그리고 주님 말씀대로 하면, 수확하는 삶, 결실하는 삶을 경험한다. 물론 주님 따름으로 인해 어려움과 핍박도 겪는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반드시 거둘 것이다(막 10:30; 딤후 3:12; 갈 6:9 참조).

그런데 사실 기적적 포획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있다. 바로 큰 물고기들이 그렇게 많이 걸려들었는데도 그물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그물은 보통은 목화의 일종인 아마(亞麻)나 대마(大麻)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쉽게 찢어졌고 자주 수선해야만 했다. 제4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도 그물을 수선하던 중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던가(막 1:19 참조)?

그런데 원래 잘 찢어지는 편인 목화 재질의 변변치 않은 그물이 어떻게 큰 물고기 153마리를 견뎠을까? 아무리 봐도 주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에 대한 진한 암시가 느껴진다(요 21:18-19 참조).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없던 디베랴 바다에서 큰 물고기 153마리가 단숨에 포획된 것은 분명 놀라운 기적이다. 그러나 부실한 목화 그물이 153마리나 되는 큰 물고기들의 중량을 완벽히 견뎌낸 것은 사실 그보다 더 큰 기적이다. 저자 요한은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강조한다. "이같이 [큰 물고기가]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 21:11)."

주님께서 처음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을 부르실 때도 기적적 포획의 역사가 있었다(눅 5:1-11). 그러나 그때는 그물이 찢어졌다. 아니,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그물까지 성할 수 있을까?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님께서 지금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 것일까? 이 사건을 통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시는 걸까?

말기 암 환자가 기도를 통해 회복되면, 흔히들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고통이 극심한 삶 가운데도 암에 걸리지 않는 것 역시 기적이다. 우리는 '기적'을 논할 때 보존의 은혜보다는 극적 치유에 편향적으로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극적인 치유만 기적은 아니다. 냉혹하고 버거운 삶과 사역의 현장 한복판에서 우리를 보존하시는 것 역시 주님이 베푸시는 생생하고 놀라운 기적이다.

제자들은 디베랴 바다에서 이중의 기적을 경험했다. 그들에게 엄청난 포획이 기적이듯 목화 그물의 특별한 보존 역시 기적이었다.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는 요한의 목격담은 연약하고 깨어지기 쉽고 흠 많고 실수투성이인 제자들을 보호하고 보존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해 잠시 멈추어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청한다(시 46:10 참조). 찢어지지 않은 그물은 주님께서 제자들, 나아가 그의 몸 된 교회와 그 사역을 보존하신다는 상징이다(요 6:39; 10:28-29; 17:12; 18:8-9 참조). 교회와 그 사역에 대한 주님의 보호하심은 목양 사역을 위임받은 베드로의 보존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요 21:15-19 참조). 베드로가 또 다시 주님을 부인하고 믿음을 타협한다면(18:17, 25, 27 참조) 그가 돌보는 양무리들이 참혹하고도 파괴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에게나 공동체에나 미래는 항상 불확실해 보이지만, 지난 일은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지난날들을 생각해 볼 때, 주님의 도우심 없었다면 벌써 쓰러지고 자빠져서 못 일어날 일들이 여러 번 있었다. 지난 2023년 한 해 삶이 늘 쉽진 않았지만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다. 주께서 그의 은혜로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악 된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보존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삼상 7:12 참조).

사실 다가오는 새해 2024년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시는 성령을 통한 새 창조의 역사 가운데 올해보다 더 충성된 새해, 그리고 올해보다 더 신실한 새해를 믿고 기대하지만,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는 주님 앞에서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수 많은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시는 그 날까진 말이다(요 21:22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보존해 주신 은혜의 주님께서 새해에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목화그물처럼 연약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실 것을 믿는다. 그 가운데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귀한 역사를 이뤄 가시는 기적을 베푸실 것 또한 믿는다.

그렇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8-39). 그렇기에 나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 주님을 신뢰하고 새해에도 주께 모든 것을 의탁할 것이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이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 21:11).

한 줄 기도: 올 한 해를 돌아보며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인 주님의 보존의 은혜로 인해 감격하고 감사케 하소서.

편집자 주

본 송구영신 묵상 내용은 이장렬, 『바디매오 이야기』(요단출판사, 2019)에서 발췌하여 개정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요단출판사와 저자의 동의를 얻어 사용합니다. 이 책에 대한 추가 정보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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