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론”이라는 말이 있다. 전투에서 가장 높은 고지(高地)를 점령하면 전투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교회 안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10대 청소년들이나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의 지도자가 되자. 그리고 그 위치에서 복음을 전하자”와 같은 메시지가 많은 목회자들을 통해서 선포되었다. 성적이 좋은 고등학생이 교회에 출석하면, 좋은 대학 가서 판검사, 의사, 정치인, 사업가가 되라는 격려의 말이 전해지곤 했다. 대학 입시가 다가오면, 100일 기도회, 다니엘 기도회, 무슨 무슨 특별 새벽 기도회를 열고, 입시 당일에는 하루 종일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부모님들이 무슨 기도를 했을까. 더 높은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 자신의 딸이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로 기도한 부모님은 얼마나 될까.
교회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칠 때, 대부분 상(prize)을 걸어 놓고 경쟁을 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성경 암송을 잘하도록 상을 걸고, 전도를 잘 하도록 상을 걸고, 예배 시간이나 성경 공부 시간에 떠들지 않았다고 칭찬 스티커를 주기도 한다. 어린이들에게 “상”을 주는 것이 그들의 신앙을 성장시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잭 클럼펜하우어는 보상을 통한 가르침을 받은 어린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보상을 통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름이 다가오면 많은 교회들은 앞다투어 여름성경학교(VBS)를 진행한다. 3, 4개월 전부터 담당 교역자와 교사들이 모여서 주제를 정하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찬양과 율동 연습을 하고, 소그룹 성경 공부에 필요한 내용을 미리 공부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행사에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 규모가 작은 교회일수록 대부분의 교인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가 된다. 이 행사를 위해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주는 단체나 기관도 꽤 많이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이 행사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가 어린이들을 위해 많은 예산과 인원을 투입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새로운 경험? 정해진 주제에 대한 성경 말씀과 담당 교역자들을 통해 전해진 설교? 혹시, 이 행사를 통해서 어린이들은 교회의 역할을 일정부분 왜곡되어 바라보지는 않을까. 교회는 나를 위해 존재하고, 교회는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곳이라는 왜곡.
교회 학교에서의 가르침은 “고지를 점령하자”라거나, 행위에 대해 상(prize)을 주거나, 교회를 통해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고착화되면 안될 듯 싶다. “용의 꼬리가 되지 말고 뱀의 머리가 되도록” 기도하는 부모님들과 교회 학교 교사들을 통해서, 어린이들은 “고지”를 점령하는 것을 그들의 목표로 삼게 된다. 교회 생활에서의 행위를 통해 상을 받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로 여길 수 있게 한다. 정기적인 교회 출석은, 자신의 안정과 미래의 평안함을 보장받고 자신의 필요한 부분을 교회를 통해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그들끼리의 친교 집단”이나 “배타적인 이기주의자들”이라고 치부되는 것은, 성인 교인들이 교회 울타리를 크고 높게 세워 놓고, 자신들끼리의 교회 생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도 그러한 가르침을 주어야 될까. 오히려 어려서부터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이웃에게 양보와 관대함을 보여주는 삶,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가 어떠한지를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고지”를 점령하지 않더라도, 낮고 낮은 자리에서 사랑과 섬김을 보여주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선물(prize)에 대한 기대감이 없이도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1899년, 조선 인구가 1,200만명이었고, 그 중 기독교인은 7,000명 내지 8,000명이었다고 한다. 그들 대다수가 무식한 천민이었고 양반이라고 해도 대개는 출세 못한 남인들이었다. 세상적으로 “고지”를 점령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두려워 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종을 해방시키고, 백정을 형제라 부르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당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급진적인 삶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고지”를 점령하지 않고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뒤로 물러남이 없었다. 교회 학교에서는 세상과 같은 성공의 기준을 가르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고종필 교수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교육철학, jpko@pts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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