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라디오 프로그램 ‘라인오브파이어’ 진행자인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박사가 ‘하나님은 불완전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제목의 칼럼을 크리스천포스트(CP)에 게재했다.
브라운 박사는 “완벽한 목회자나 온전한 신자는 없다. 우리 모두는 결점과 약점, 교리적인 오류와 약점 및 맹점을 갖고 있다. 한 명도 예외가 없다”라며 “분명히 말하지만,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성경이 사람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과도한 이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회개하지 않는 간음이나 절도와 같은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정의했다.
대신에 그는 “우리 모두가 가진 사각지대와 단점과 결점, 심지어 우리 가운데 가장 좋은 점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며 “주님은 우리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여전히 우릴 사용하신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 자신의 음식중독을 소개하며 “나는 해롭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유일한 몸을 파괴하는 음식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뚱뚱할 때에도 나를 강력하게 사용하셨다. 음식중독자일 때도 그분은 내 사역을 축복해 주셨다”라며 “그분은 내 마음을 보셨고, 내가 그분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는지 아셨으며, 내 삶의 다른 영역은 매우 훈련되어 있었다”고 했다.
브라운 박사는 “물론, 나의 건강하지 못한 생활 방식은 내 생명을 단축시켰을 것이고, 이미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며 “그러나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나의 가르침과 설교 및 저술에 대한 그분의 축복은 줄지 않고 계속되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미국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와 영국 칼뱅주의 감리교의 수장인 조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1714-1770)에 대해 언급했다.
브라운은 “이 두 사람은 18세기에 가장 중요한 기독교 지도자이며,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고, 웨슬리는 선배였다”라며 “그러나 웨슬리는 충실한 알미니안주의자, 휫필드는 확고한 칼빈주의자였기에 한동안 그들 사이에 깊은 골이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서로의 믿음에 대해 대놓고 설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분리되었을 때에도 둘을 강력하게 사용하셨고, 그들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며 “불행히도, 웨슬리와 휫필드는 개인적으로 화해했지만, 그들의 많은 제자들은 분열된 채 남아 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브라운은 존 웨슬리에 대해 “노예제도에 대한 확고한 반대자였고, 영국과 대영제국에서 노예제도를 근절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윌리엄 윌버포스(Willian Wiberforce)의 삶에 영향력 있는 역할을 했다”라며 반대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휫필드는 노예제도에 관한 한 매우 복잡한 기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청년 시절 휫필드가 “1740년까지 미국 식민지에서 그의 야외 설교는 수만 명의 군중을 모았고, 그가 출판한 ‘메릴랜드, 버지니아, 노스 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노예 학대에 대해 남부 노예 주인들을 기소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며 “자신의 설교에 화답한 흑인 미국인들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보였고, 그들이 영원한 운명을 가질 뿐만 아니라 진지하고 교육받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브라운은 “그러나 1740년대 중반, 휫필드는 자신의 목회 아래 개종한 노예 주인들과 연결되었고, 비록 공개적으로 노예제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철회한 적은 없었지만, 부유한 친구들이 그에게 노예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농장을 주겠다는 제안에 따랐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휫필드가 조지아 농장에서 일할 노예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의 이력 중 가장 위대한 자선 프로젝트인, 사바나 외곽의 베데스다 고아원의 운영 자금을 대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브라운 박사는 “여기 그 시대에서 가장 지칠 줄 모르는 복음 설교자이며, 고아와 흑인 미국인 개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또한 그는 노예제도의 확장을 가장 강력히 옹호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며 “눈에 띄는 맹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존경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는 노예제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휫필드의 행동을 쉽게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었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더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는 이 순간에 중대한 맹점을 가지고 있다. 휫필드가 그의 시대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들을 우리 시대의 사람들로 착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론은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이 함께 하실 수 있는 일의 전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교리적으로 건전하고 성경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규율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한편, 나는 매일 하나님의 자비로 살고 있고 사역하고 있음을 시인한다. 여러분께 그분과 같은 자비를 베풀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