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글로벌복음통일전문네트워크선교대회(대회장 임현수 목사, 사무총장 박상원 목사) 넷째날인 19일 시카고 지역에 있는 트리니티인소사이티 연구소장 김종덕 목사는 ‘한인 디아스포라와 사명’을 주제의 강의를 통해 고난의 역사를 겪은 한민족 디아스포라가 세계선교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목사는 이날 오전 휴스턴한빛교회(담임 정영락 목사)에서 진행된 강의를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범위를 북미와 유럽 등에 국한시키지 않고 조선족, 고려인을 비롯해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멕시코와 쿠바까지 건너갔던 한인들까지 포함해서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이 한민족을 흩으신 것은 이미 1800년대부터 시작됐다. 1900년대초 하와이와 멕시코에 노동인력으로 건너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민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면서 “조선족과 쿠바 한인 등 현재 공산주의 국가에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잘 설명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부분까지 봐야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조선족의 경우 당시 국민당이 한인을 차별하고 귀국을 종용하는데 반해 공산당은 소수민족으로 인정했던 당시 역사적 배경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인 디아스포라와 관련 김 목사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이주된 한민족의 후손인 고려인들은 구소련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 일대에 약 50만명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워 교육했고, 근면성실하게 일했다”면서 “일례로 카자흐스탄 부자 50위 안에 현재 고려인 7명이 들고 있으며 고려인이 나라 전체 0.5%에 불과함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통일에 있어 이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려인 72%가 남북통일 중재자 역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면서 “다만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남북한에 대해 균등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하며, 동시에 한반도 통일을 위해 이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미국과 멕시코 한인이민 역사도 소개했다. 김 목사는 “초기 하와이 이주와 멕시코 이주는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었다. 특히, 멕시코 이민자들은 부채노동자로 속아 이민 옴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어려움 속에 그 노동환경은 하와이 이민보다 더 심각했다”면서 “고종황제가 당시 노예로 팔려간 그들을 구출하고자 노력했지만, 대한제국은 약한 나라였고 멕시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가 없어 이민자를 구출하는 외교를 펼 수 없어 결국 이민자 구출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가슴 아픈 역사를 소개했다.

당시 하와이 이민은 알렌 선교사가 고종황제의 재가를 받아 이루어진 정상적 이민이었다. 하와이에서의 노동환경은 조선에서 이민을 권장하던 홍보문구와는 차이가 커서 이름대신 반고(번호표)를 통해 불려지고 채찍을 맞으며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지만 이러한 자세한 현지의 노동환경까지는 알렌 선교사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첫 하와이 이민이 시작된 이후 조선에서는 몇 차례 더 하와이 이민이 이뤄진다.

멕시코 이민자들의 경우 유카탄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짐승처럼 건강상태를 치아의 상태로 정검받고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에네켄 농장으로 팔려갔다. 고종은 멕시코 이민이 부로커들에게 속아 '부채노예'로 팔려간 것을 알고, 이들을 구출하려 했으나 결국 길을 찾을 수 없어 멕시코이민을 금지한다. 때문에 멕시코이민은 단 1회에 그친다. 당시 하와이 이민자들과 멕시코 이민자들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점은 유사하지만 멕시코 이민자는 완전한 노예로 살았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당시 멕시코 한인 노동자들의 쿠바 이주와 관련 김 목사는, “이민자들은 멕시코 노예혁명과 더불어 4년 노동계약이 마쳐져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했으나 이미 대한제국은 사라져 돌아갈 조국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서 “나라 잃은 이민자들은 가장 낮은 계층으로 멕시코에 남거나 사탕수수 노동자로써 쿠바로 이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인 디아스포라 형성 과정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고난의 역사로만보지 않고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소명을 위해 흩어졌다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요셉이 억울하게 팔려가고 죄수로도 지냈지만 그는 총리가 된 이후 형제들을 만나 하나님이 자신을 먼저 보내셨다고 고백했다”면서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개척 과정에서 정말 고생하고 인종차별도 많이 받고 초기 이민자의 경우 노예처럼 대우를 받았지만 복음통일을 이뤄가는데 있어 한민족 디아스포라가 크게 쓰임을 받을 것이고 더 나아가 세계 복음화를 위해 먼저 보내진 민족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 곳곳에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 목사는 “한국인들이 유대인보다 더 똑똑하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완벽한 언어로 디아스포라 사회에서 리더로써 실력을 갖춰서 세계선교 및 외교적 협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면서 “북한 지하교회 출신을 만났는데 이슬람에 선교를 가겠느냐고 하면 대번에 가겠다고 한다. 로마의 핍박 속에 초대교회가 지하에서 지냈던 것 처럼 한인 디아스포라들도 철저히 준비돼 있다. 이중언어가 되고 이중문화를 이해한다. 그리고 한국 선교사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처럼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워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 디아스포라를 통해 북한 지하교회의 명맥이 이어진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목사는 “1996년 북한에 불어닥친 기근으로 인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온 배고픈 북한 이탈민들에게 국경 주변의 조선족 처소교회는 한국 선교사들의 물질적 후원을 받아 음식과 쪽성경을 이들에게 전해줬다”면서 “이 만남은 북한 지하교회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북한 지하교회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 목사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역사를 보면 비참하고 처절하고 아픈 일 가득하고 분노 상처가 있다. 그러나 역전의 하나님은 그것을 변화해서 영광으로 만드실 것”이라면서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에 부활이 있듯이 우리들에 고난의 역사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이 사명을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란다”고 권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