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를 벗어나 풍성한 생명의 땅, 열대우림지대로

케냐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케냐에 오면 음식 때문에 불편함을 겪을 줄 알았다. 떠나기 전에 잘 먹고 영양을 보충해두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고도 있었다. 그런데 웬 일인가? 이곳 나이로비에도 한국 식당이 있지 않은가? 암보셀리에서 나이로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잘 정돈된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개며 된장국이며 불고기 등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세계 어느 곳이나 가는 곳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국식당이 있다는 것이 늘 놀랍고 고맙다. 우리 민족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지 않은가?

나이로비를 떠나 북쪽으로 향한다. 남반구, 적도 남쪽에서, 이제 적도를 향해 북으로 달리는 것이다. 나이로비 시내의 북쪽은 남쪽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의 대 도시들이 부유층이 사는 지역과 빈민층이 사는 지역이 확연히 나뉘듯, 나이로비도 북쪽 지역 시내는 사바나로 이어지는 남쪽과는 달리, 지은 지 오래지 않은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눈에 들어오는 깔끔한 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케냐에는 공립대학이 7개, 사립대학이 다섯 곳이다. 케냐인들 뿐 아니라, 이웃 국가들의 사람들도 이곳에 유학을 온다.

버스는 적도 근처에 위치한 아버데아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나이로비에서 약 세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2차선의 하이웨이가 시원하게 뚫린 잘 포장된 길을 달린다. 부슬비가 내린다. 도로 주변은 풍부한 강우량 때문인지 온통 짙은 초록빛 일색이다. 마치 한여름 장마철에 한국 농촌을 달리는 기분이 된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며 전개되는 커피, 차, 파인애플, 옥수수밭들이 적당히 내리는 빗속에 그 싱그러운 모습들을 드러낸다. 바로 오늘 오전만 해도 사바나의 건조한 풀밭과 군데군데 선 아카시아 나무들의 메마른 모습을 보고 계속 달려오지 않았던가? 나이로비 시를 두고 그 남쪽과 북쪽이 이렇게 다른 풍경을 보일 수 있다니 놀랍다.

문득 중학교 시절 지리 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수 십년만에 생각해 낸다. “적도에서 남북위 10도까지는 열대우림지역, 10도 위로는 사바나, 30도에서 40도는 지중해성 기후, 40도에서 60도는 편서풍기후” 그렇구나. 사바나 지역에서 북으로 적도를 향해 오니, 열대우림지역을 만나는 거구나. 그러나, 이렇게 비가 흩뿌림에도 불구하고, 전혀 후덥지근함이 없다. 온도도 화씨 70도 정도로 시원하다. 나이로비 북쪽의 이 지역들은 평균 해발 1,500m 이상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어 적도 부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늘 이렇게 쾌적한 기후를 자랑한다. 하긴 적도 근처이니, 여름이나 겨울이나 온도의 차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청청하게 푸르른 키 큰 나무들, 빽빽한 초록의 숲들, 노란 들꽃들, 대규모의 옥수수밭. 운전사 조지가 자신의 고향 마을이 있다는 쪽을 가리키며 귀뜸 해준다. “여기가 케냐의 중부지대지요. 부자들이 많이 살아요. 종족으로는 키쿠유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지금 조모 케냐타 대통령도 여기 출신이랍니다.” 그래서인가? 하이웨이가 그 어떤 곳보다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케냐의 제 일 산업인 농업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케냐에서 가장 많이 수출되는 농작물은 차이고, 그 다음이 커피다. 차와 커피는 주로 영국을 중심한 유럽지역으로 수출된다.

산등성이를 돌아가는 곳에 놓여진 운치있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 밑을 보니 붉은 강물이 굽이쳐 흐른다. “타나 강이에요. 케냐에서 가장 큰 강이지요.” 폭이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데, 지도를 보니 케냐 산(MT. Kenya)에서부터 케냐 중심부를 적시며 남동쪽으로 흘러 인도양으로 빠져드는 긴 강이다. 사바나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늘 물이 문제인데, 이곳은 수시로 내리곤 하는 비 때문에 모든 것이 풍성하다. 숲이 무성하고, 꽃들도 풍부한 영양 때문인지 LA의 꽃보다도 더 커다랗게 꽃을 피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창밖에 펼쳐지는 풍요한 초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성경구절 [요한복음 10장 10절]이 떠오른다. 풍성한 생명이 주는 아름다움이여!
“주여, 주님 주시는 은혜의 비가 내 마음의 정원에 수시로 내려, 나의 영혼이 풍성해지게 하소서. 이곳의 숲과 밭이 농작물을 생산하여, 케냐 사람들을 살리듯이 나의 영혼의 밭도 주님 주시는 은혜로 메마른 영혼들을 살려내는 열매를 맺게 하소서. 당신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케냐는 한국만큼이나 교회가 많은 나라인가 보다. 나이로비에서 니에리에 이르는 곳곳에 교회들이 눈에 뜨인다. 기독교인 인구가 전체 인구 중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이 기독교의 전초기지라면, 아프리카에서는 단연 케냐가 그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리라. 케냐에 사는 한국인들이 600여명인데, 그중 350명이 선교사와 그 가족이라고 한다.

승합차가 니에리(Nyeri) 시를 경유한다. 춘천이나, 덴버 같은 소 도시로 정갈한 인상을 주는 유럽풍의 도시다. 가로수길이 때맞추어 핀 노란 들꽃들로 인해 싱그럽다. 주변의 큰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며 불타는 듯 피어있는 부겐빌라의 빛깔이 아프리카의 태양빛을 받아서인가? 더 선명하게 빛난다.

나무 위 호텔(Treetops)에 스스로 갇힌 자 되다

고도가 더욱 높아지며,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숲이 무성한 산길을 오른다. 아버데아 국립공원이 가까운 곳에, 아웃스팬(Outspan) 호텔이 있다. 이곳에 무거운 짐들을 맡기고, 국립공원 안에 있는 트리톱(Treetops)으로 가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아웃스팬 호텔의 널찍하게 펼쳐진 초록 잔디 정원을 배경으로 그 붉은 정열을 불태우는 듯 칸나가 만발하다. 정원을 화사하게 수놓고 있는 가지각색 꽃들이 하루 종일 달려온 나그네의 피로감을 일시에 몰아가 버린다. 아프리카의 짙은 푸르름을 만끽하며, 마시는 따끈한 케냐 산 홍차 맛 또한 일품이다. 미국 여행하면서도 이렇게 아름답고 정갈하게 가꾸어 놓은 정원을 보기 힘들었는데, 케냐에서 이런 곳을 보게 될 줄이야... 예기치 못한 것들을 계속 만나게 되는 케냐 여행이다. 한 나라 안에 지역에 따라 극도로 다른 여러 형태의 기후가 상존 하는가 하면, 빈부의 차 또한 극심하게 대비되는 나라. 극과 극을 오고가는 여행이다.

호텔에서 마련한 미니 버스를 이용해, 아버데아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케냐 산 근방에 있는 이 아버데아 공원은 나이로비에서 165km 북쪽에 위치하며 총 면적은 715 평방 킬로미터이다. 공원으로 가는 길 주변엔 열대지역의 풍성한 숲들이 초록색 강물이 되어 물결친다. 해발 6,400피트 산 속에 위치한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혼자 서성이는 사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가니, 원숭이 가족들과 버팔로의 무리들이 시선을 끈다. 트리톱이 가까워오면서, 여기는 우리 동물들의 삶의 터전임을 주장하듯 더 많은 야생 동물들의 무리들이 나그네들을 맞는다.

트리톱 호텔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뗄 수 없는 인연 때문에 더욱 그 주가를 높이고 있다. 1952년 공주였던 엘리자베스가 이곳에 올라왔었는데, 바로 그날 밤 부친인 조지 6세의 부음을 듣게 된다. 그의 서거로 인해 트리톱을 내려올 때의 엘리자베스는 이미 공주가 아니라 여왕이 되어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여왕으로 승격하여 내려온 장소이기 때문일까? 여왕은 1983년 이곳을 방문하여 그녀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남긴다.
트리톱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들의 나무기둥들을 토대로 그 위에 지어진 3층 짜리 목조건물이다. 2층과 3층엔 마치 퀸 메리호의 선실처럼 작은 숙소들이 수십 개 올망졸망 붙어있다. 또한 다이닝룸과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넓은 휴게실이 있는데, 시원스레 뚫린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야생동물들의 오고감을 지켜보도록 되어 있다. 호텔 앞과 뒤에 커다란 인공의 늪이 조성되어 있어 물을 마시러 오는 동물들의 떼가 끊이지 않는다. 건물 옥상은 탁 트인 공간에서 야생의 무리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원한 장소이다. 새벽녘, 서서히 어둠을 깨고 장미빛으로 번져가던 여명의 빛을 가슴 가득 담으며 내가 아프리카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호텔 3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니 마침 코끼리 대 여섯 마리가 바로 아래편에서 물도 마시고 무엇인가 먹이를 찾고 있다. 거대한 늙은 코끼리가 그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동이 물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좍좍 소변을 보는 것도 볼만한 구경거리다. 황토빛 늪으로 버팔로의 떼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물을 마시며 장관을 연출한다. 일단 트리톱 호텔에 들어는 왔지만, 함부로 야생동물이 있는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금물이다. 버팔로나 코끼리, 혹은 다른 야생동물이 언제 어떻게 공격해 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 위에 붕 떠서 지어져 있는 목조건물 트리톱의 작은 공간 안에서 내일 아침 떠날 때까지 약 16시간을 보내게 된다. 마치 유람선을 탄 것 같기도 하고, 노아의 방주 속에 들어와 있는 것도 같다. 한 밤중에 하이에나가 나타났으니 내다보라는 안내방송을 듣는다. 무슨 동물이 나타나든 이 트리톱 안에 있는 한,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다. 무덥고 끈적끈적한 열대우림지역을 상상하곤 했었는데, 간간이 비가 뿌려대는 아버데아 공원 산 속의 밤은 오히려, 쌀랑하다 못해 추위까지 느껴진다. 창 밖을 보니, 한 밤 어둠 속에서도, 코끼리를 비롯한 몇 마리의 야생동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늪가를 서성인다.

문득 이 창을 사이에 두고 누가 누구를 관람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해지기 시작한다. 분명 야생동물을 보러 온 것은 나인데, 주객이 전도된 듯 싶다. 나는 영락없이 트리톱 안에 갇혀있는 신세가 아닌가? 동물들은 자유롭게 활보하며, 목조건물 속에 감금된 채, 유리창 뒤에 나타난 사람이란 동물들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사람들은 트리톱이란 이름의 동물원 안에 들어 있는 형국이고, 야생의 동물들은 그들을 무심한 눈으로 구경한다.

지키는 자와 갇혀 있는 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을 당하는 자, 가해자와 피해자. 때로는 그 구별이 모호해 질 때가 있다. 바울과 실라는 오히려 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하며, 자유함을 누린다. 마음에 평화가 있기에 족쇄에 채워진 상태에서도 깊은 잠 속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를 지키는 간수는 불안함으로 전전긍긍해 한다. 잠을 이룰 수 없다. 죄수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가는 자신의 위치가 어찌 될지 모른다는 중압감이 그를 억누른다. 완전히 갇힌 자와 가둔 자의 입장이 돌변한다.
어쩌면, 아프칸에 억류된 우리 성도들의 상황도 이런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갇힌 그들보다도, 오히려 그들을 억류하고 그들을 감시하는 자들이 갖는 불안이 더 클지도 모른다. 인질 구출작전을 대비하여, 폭탄이 든 조끼를 입고 감시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만큼 인질들을 감시하는 탈레반들은 자신들이나 인질들에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갇힌 자 못지 않은 불안과 초조함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진 않을지...

주여, 우리들의 인질들의 마음을 주장해 주셔서, 평강과 의연함으로 그들을 억류하고 있는 자들을 대하게 하소서. 사도바울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간수를 오히려 격려하고 구원으로 이끈 것처럼, 이들의 존재가 아프칸의 황량하고 삭막한 지형처럼, 메말라 버린 탈레반의 감시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하소서. 주님 주시는 평강이 어떤 것인지를 그들에게 무언으로 보이게 하소서. 그들이 갖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의연함이 탈레반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충격의 씨앗으로 심어지게 하소서. 먼 훗날 그 씨앗이 싹 트일 수 있도록...

**이 편지를 보내기도 전에 그들이 돌아왔음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