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신경숙 작가의 책 「엄마를 부탁해」가 국내는 물론 외국의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켰었다. 특히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첫 문장을 통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존재라고 여겼던 엄마에 대한 많은 감정과 생각을 환기하면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새삼스럽게 이 베스트셀러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엄마를 잃어버린 우리가 과연 아빠는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하는 물음표를 던지기 위함이다.

우리 가정과 사회가 아빠를 잃어버린 지는 얼마나 됐을까?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신모계사회가 도래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런 말은 우리가 체감하기엔 너무나 멀다. 그런데 이건 어떨까?

얼마 전 동화약품이 한국 갤럽에 의뢰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가족식사 불참자 1위가 바로 ‘아버지’(70.4%)라고 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의 경우 85.4%가 이에 해당했다.

가족들이 모두 집에 있어도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 사회 가정의 현실이다. 그나마 함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식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바쁘게 달리는 우리 아버지들은 그마저도 함께하기 힘든 것이다. 이렇게 아빠의 얼굴을 보기 힘든 가정의 아이들에게 아빠란 존재는 그야말로 먼 존재이다. 심지어 TV에 나오는 스타나 ‘뽀로로’보다도 먼, 신화격인 존재다.

아빠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경우 자존감과 사회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는 데다 아빠 효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가정에서 아빠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와 고민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정책적으로 그 어떤 대안이나 위기의식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인 것.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가정에서 엄마와 아빠들이 가지고 있는 ‘가정 내 아버지의 존재 의미와 역할’에 대한 인식이다. 그처럼 소중한 인식이 아직도 고루하기 짝이 없는 가부장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 그 어떤 새로운 이론이나 정책이 나온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인 것이다.

‘ 아버지의 성(父性)

지난 7월, EBS다큐프라임에서는 3부작 <아버지의 성>이라는 기획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잊고 있었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아빠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진정한 아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찾아가는 이 시대 아빠들의 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통해 우리 가정이 아빠의 중요함과 존재 의미를 이해하고, 아빠들이 가정에서의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그대로 「아버지의 성」(2012.베가북스)으로 이어져 아버지에 대한 사회적인 환기를 계속해서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빠가 되면서 남자가 겪게 되는 심리적·신체적인 변화와 더불어, 현재 우리 사회의 아빠들이 나름대로 아빠로서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모습을 유수의 전문가들의 자문과 연구, 국내외 아빠들의 밀착 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한 이미 아빠를 주목하고 있는 외국의 사회·정책적인 변화를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놓치고 있는 ‘진정한 아빠 되기’란 무엇인지 모색하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또다시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돌아왔다. 떠들썩하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온갖 이벤트가 쏟아지겠지만 그 와중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과의 따뜻한 시간, 함께하는 식사, 특별한 행사 모두 중요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우리 가족 중 잃어버린 이는 없는가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 아빠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함께 고민해봐야 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