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이길 포기하지 말라(P&R)>는 평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성인 자녀와의 관계에서 성공하는 법’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내 자녀의 바른 성장과 성공’을 위해 빠르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온갖 정성을 들이지만,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즉 성인이 되고 나면 자녀들을 방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대학 간판’을 성공의 척도로 여기는 한국의 부모들은 대학 입시에 올인하느라 신앙생활마저 뒷전으로 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고, 우여곡절 끝에 어디가 됐던 대학에 입학한 자녀들은 더 이상 부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서 신앙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게 현실.
미국의 상황이라고 별다를 게 없다. 미국은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저자 짐 뉴하이저와 엘리제 핏츠패트릭은 “부모와 성인 자녀 사이의 갈등은 크리스천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면서도 “기독교 공동체는 이 문제와 관련된 교회만의 안고 있는데, 기독교 가정에서 양육된 많은 젊은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에는 신앙생활을 그만두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책에서 “성인이 된 자녀에게 부모는 어떤 권위를 갖고 있는가?”, “만약 자녀가 부모의 동의 없이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성경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특정한 공식이나 규칙에 의존하기보다, ‘모범답안’처럼 들리겠지만 십자가를 바라볼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완벽한 아버지를 두셨고 본인 또한 완벽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영원에 들어설 때 우리 자녀들에 대한 부모 역할은 끝나겠지만,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은 영원토록 당신의 부모 역할을 하실 것이라 확신해도 좋다.”
저자들은 제사장이 된 자녀들의 악행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른 ‘엘리 제사장’의 예를 든다. 오늘날 많은 부모처럼, 엘리도 비뚤어져 나가는 아들 딸들의 죄와 결점을 보면서도 잔소리만 할 뿐, 더욱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의 죄를 방치하게 되는 이유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영혼보다 내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희망에 얽매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분이 들지라도, 오직 하나님을 먼저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몇몇은 성인 자녀에게 책임감 있는 삶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기독교적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녀가 경건치 못한 삶을 살도록 허용할 때, 우리는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잠 13:34).”
어리석은 젊은이는 부모의 잔소리와 우는 소리에 설득당하지 않는다. 오직 단호한 행동만이(잠 26:3) 해답이다. “20세가 넘은 자식의 엉덩이를 때릴 수는 없지만, 용돈을 끊고 자동차와 휴대폰과 신용카드를 뺏을 수는 있다. 너무 심한 것 같고 사랑이 없는 조치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이렇게 강한 행동은 성령께서 자녀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사용하실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비롯된 단순한 행동과 계속된 훈계를 이용하여 일평생의 어리석음과 고통으로부터 자녀를 구원할 수 있다.”
저자들은 하나님께 “예”라고 하면서, 자녀에게는 강하게 “안돼”라고 하는 것이 자녀들을 진정 사랑하는 행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가끔은 이렇듯 적극적인 대응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도 필요하다. 자녀가 하나의 선택으로 인한 결실을 직접 경험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갈 6:7).
원론적인 내용들을 주로 소개했지만, ‘채무자도, 채권자도, 보증인도 되지 말라’, ‘자녀보다는 배우자의 말에 동의하라’, ‘기대에 못 미칠 때는 그에 따른 결과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가족(자녀의 결혼 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 ‘성인 자녀와 맺을 수 있는 계약서 샘플’ 등 구체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담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태껏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것이 된다. 그리고, 부모이길 포기할 수 없으니 아픔도 따르는 것이다. “자녀가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자녀의 삶에 기적을 행하실 능력이 있으시다.”
많은 부모들이 ‘내 자녀의 바른 성장과 성공’을 위해 빠르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온갖 정성을 들이지만,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즉 성인이 되고 나면 자녀들을 방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대학 간판’을 성공의 척도로 여기는 한국의 부모들은 대학 입시에 올인하느라 신앙생활마저 뒷전으로 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고, 우여곡절 끝에 어디가 됐던 대학에 입학한 자녀들은 더 이상 부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서 신앙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게 현실.
미국의 상황이라고 별다를 게 없다. 미국은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저자 짐 뉴하이저와 엘리제 핏츠패트릭은 “부모와 성인 자녀 사이의 갈등은 크리스천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면서도 “기독교 공동체는 이 문제와 관련된 교회만의 안고 있는데, 기독교 가정에서 양육된 많은 젊은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에는 신앙생활을 그만두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책에서 “성인이 된 자녀에게 부모는 어떤 권위를 갖고 있는가?”, “만약 자녀가 부모의 동의 없이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성경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특정한 공식이나 규칙에 의존하기보다, ‘모범답안’처럼 들리겠지만 십자가를 바라볼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완벽한 아버지를 두셨고 본인 또한 완벽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영원에 들어설 때 우리 자녀들에 대한 부모 역할은 끝나겠지만,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은 영원토록 당신의 부모 역할을 하실 것이라 확신해도 좋다.”
저자들은 제사장이 된 자녀들의 악행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른 ‘엘리 제사장’의 예를 든다. 오늘날 많은 부모처럼, 엘리도 비뚤어져 나가는 아들 딸들의 죄와 결점을 보면서도 잔소리만 할 뿐, 더욱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의 죄를 방치하게 되는 이유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영혼보다 내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희망에 얽매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분이 들지라도, 오직 하나님을 먼저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몇몇은 성인 자녀에게 책임감 있는 삶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기독교적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녀가 경건치 못한 삶을 살도록 허용할 때, 우리는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잠 13:34).”
어리석은 젊은이는 부모의 잔소리와 우는 소리에 설득당하지 않는다. 오직 단호한 행동만이(잠 26:3) 해답이다. “20세가 넘은 자식의 엉덩이를 때릴 수는 없지만, 용돈을 끊고 자동차와 휴대폰과 신용카드를 뺏을 수는 있다. 너무 심한 것 같고 사랑이 없는 조치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이렇게 강한 행동은 성령께서 자녀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사용하실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비롯된 단순한 행동과 계속된 훈계를 이용하여 일평생의 어리석음과 고통으로부터 자녀를 구원할 수 있다.”
저자들은 하나님께 “예”라고 하면서, 자녀에게는 강하게 “안돼”라고 하는 것이 자녀들을 진정 사랑하는 행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가끔은 이렇듯 적극적인 대응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도 필요하다. 자녀가 하나의 선택으로 인한 결실을 직접 경험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갈 6:7).
원론적인 내용들을 주로 소개했지만, ‘채무자도, 채권자도, 보증인도 되지 말라’, ‘자녀보다는 배우자의 말에 동의하라’, ‘기대에 못 미칠 때는 그에 따른 결과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가족(자녀의 결혼 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 ‘성인 자녀와 맺을 수 있는 계약서 샘플’ 등 구체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담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태껏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것이 된다. 그리고, 부모이길 포기할 수 없으니 아픔도 따르는 것이다. “자녀가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자녀의 삶에 기적을 행하실 능력이 있으시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