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속담에 보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와 ‘알고도 사람은 속아 넘어간다’라는 말들이 있다. 이것은 내 자신이 탐욕의 눈이 어둡거나 지혜가 부족하면 속이는 사람의 눈 앞에서 속아 넘어가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시각에서 속이는 사람들에게 쉽게 넘어가는 경우를 본다면 그것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직장의 상사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아부’하여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는 것이다. 아부를 한자어로 본다면 언덕아(阿)와 붙을 부(附)가 결합이 되어 ‘언덕에 붙다’는 말인데 이말은 곧 군주에게 자신의 몸을 기대거나 의탁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하는 사회속에서 출세를 하지만 이것을 잘 못하면 실패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것을 영화로 묘사한 내용이 최근에 한국에서 상영된 ‘아부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영화의 줄거리를 보면 아부를 할 줄 몰라 직장을 여기저기 옮겨다녀야만 했던 ‘동식 (송새벽)’이 ‘감성 영업의 정석’이라는 비법책을 저술한 아부계의 전설 ‘혀고수(성동일)’을 찾아가는데 그 이유는 동식의 어머니가 만년 교감으로 있는 자신의 남편을 교장으로 만들기 위해 사채를 끌어들여 교육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데도 교장으로 승진이 되지 않는다. 그 당시 동식은 보험회사 개발부로 들어가 어머니가 사채업자들로부터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돈을 갚기위해 보험회사 영업 사원으로 들어가고 혀 고수의 지도하에 보험의 왕이 된다. 그리고 재계의 큰 손 이회장을 만나 위기를 만나게 되지만 마지막에는 부정한 이회장을 보복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부의 왕’의 영화가 대박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 그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아부가 과거의 시대보다 더 크게 삶을 좌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한국의 사회에서 ‘학연, 지연, 혈연’의 인맥으로 성공의 줄을 잡으려고 하는 모습은 과거나 현대나 다를 것이 없지만 아부는 과거보다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현대를 ‘아부의 시대’라고 칭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아부는 사실상 아첨을 듣는 리더나 아첨을 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목사가 설교를 마친 후에 성도로부터 “오늘 목사님 설교 너무나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 목사님의 설교가 제일 입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느 목사이든 기분이 좋지 아니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목사에게 이렇게 기분좋게 말을 하는 성도를 어느 누가 책망을 할 것인가? 아마 그런 목사는 이세상에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아첨을 하는것이 순수한 의도가 아닌 뭔가 목적을 가지고 아첨을 하거나 그것을 들은 사람이 아첨으로 인해 교만에 빠져 분별력과 판단력이 흐려져 중요한 것을 결정하는데 실수를 한다면 그것은 한 사람에게 뿐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라 전체에 혼돈을 주는 경우가 발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부에는 현명한 아부와 어리석은 아부에 관해 아첨을 듣는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다.

특별히 어느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리더는 아부에 관해서는 예리한 판단력을 지녀야 한다. 그 이유는 아부와 아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첨으로 인해 조직의 그룹을 파괴하거나 당(黨)을 지어 분리를 하려고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고 책망 받아야 한다. MBC 방송사에서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을 위해 ‘무신’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는데 거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간신들에게 어리석은 아부를 들어 폭군의 카리스마를 지닌 최항을 볼 수 있다. 그는 최우의 천출로 태어난 형인 만종과 함께 난봉군과 패악질로 더러운 삶을 살다가 그의 아버지 최우가 죽고 난후에 마땅한 계승자가 없어 김준이 망나니 만전을 도방내 최고의 권력자인 ‘합하’의 자리에 올려 놓는다. 그러나 그는 천출의 열등감과 설움을 가지고 통치하기에 잘못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아버지 최우가 사랑하는 가신들과 자신의 계모인 최우의 아내를 죽인다. 준비되지 않은 천출 만전이 합하가 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가 ‘개 망나니’로 살게된 것은 철저히 잘못된 아부로 인해 그가 이성을 잃게 되고 김준의 지시에 의해 음식물을 먹고 배탈이 나 이유없이 죽게 되는 비극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아부가 자신을 죽일 뿐 아니라 민족을 이끄는 훌륭한 지도자 그리고 백성들에게 고통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어리석은 아부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에서 시작된 것이며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비극적인 아픔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만연되 하나가 있다면 자기 중심의 도덕주의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다. ‘나는 선하고 저는 악하다’는 사고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표리부동이나 언행일치의 모습을 가지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들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좀처럼 찾아 볼 수 가 없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1:8절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말은 곧 믿음과 온전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경건하고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는 말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결코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불안전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 일들이 사회와 믿는자들이 해야 할일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건하고 충실한자가 소멸되어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져야 한다.

시편12:1절을 가르치기를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이 말은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을 가리키고 충실한 자를 말하는데 점진적으로 교회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앙생활을 온전히 유지해 갈 수 없도록 계속적으로 세속화, 형식화, 물질중심으로 살아가게 하여 빛을 볼 수 없는 어둠속에 살게 하는데 이러한 시대를 “영적인 암흑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세상이 사라져도 없어지지 아니할 진리의 말씀 곧 빛이신 예수에 관한 말씀 중심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그 속에서 소망을 가지는 일이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기 때문이다.”믿음과 생명력을 가지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뿌리 깊은 신앙의 삶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상이 일시적으로 주는 아부에서 돌아서 진리이신 말씀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을 영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부에 의해 쉽게 넘어지지도 아니할 것이며 아름다운 사회를 이끌어가는 건강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