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비비어(부인 리사 비비어) 부부가 쓴 [임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 리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남을 험담하고 난 뒤, 매 번 후회하며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양심도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나도 하고 싶지 않았으나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그래서 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험담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정도였다.”

우리들 대부분은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 의해서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았거나, 나쁜 소문의 피해를 입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잘 모르면서, 나에 대하여 저런 어처구니 없는 지레짐작으로 말을 하다니……’하면서 우리는 분개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도 자칫 부주의하면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남을 험담하는 것이 나쁜 행동인지 알면서도 왜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첫째, 타인에 대한 험담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고, 타인의 실패에 안도감을 느끼는 비뚤어진 심성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잘 되면야 기쁘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둘째, 내가 아는 것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겸손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겨우 하나를 알면서 여러 가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은 두렵기 때문에 아는 체 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교만 덩어리’ 아니겠습니까?

셋째,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만약 나에게 이런 믿음이 없으면 험담을 이용하여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CCTV보다 선명하게 보고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넷째, 타인을 깎아내리면 내가 올라가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나와 똑같이 예쁘다는 말을 듣는 친구가 있다면, 그에게 작은 흠집을 냄으로, 상대적으로 내가 올라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험담은 그 자체로 나의 인격의 부족을 드러냅니다.

성경은 험담을 듣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심리적 안정감이 없고, 불신과 두려움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남을 욕하는 사람 앞에서, 분위기에 편승하여 부정적인 정보를 보탠다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일이 아닐까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잠26:4)

남을 헐뜯고 싶은 마음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며,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