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집권하고 유대인들의 박해가 도를 더해가던 무렵에 독일의 자랑인 실존주의 철학자 K. 야스퍼스가 겪은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의 아내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일하던 대학에서 계속 일하려거든 이혼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야스퍼스는 아내를 포기할 수 없어 교수직을 내려놓게 됩니다. 더욱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스위스에서 그를 교수로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야스퍼스는 나갈 수 있어도 유대인은 나갈 수 없다고 막았습니다. 야스퍼스는 유대인 아내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제네바 대학의 부름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어떤 시련과 역경이 온다 해도 나는 내 아내를 지킬 것입니다. 그것이 내 사명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살다 보면 종종 잘 산다는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있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하나같이 ‘목적 있는 삶을 살았다거나 사명이 없는 인생은 무가치한 것’이라는 정도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 보람된 인생이요 잘 사는 인생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사명을 발견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인생이 긴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음을 한 해, 두 해 사노라면 느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사명을 따라 산다고 해서 출세가 보장되거나 성공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니 사명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돈이나 명예 혹은 인기를 위해 살다가 인생 허무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노라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말하면서도 돈 때문에 하나님 믿고, 돈 때문에 교회 다니고, 돈 때문에 신앙도 포기하고, 다니던 교회도 버리고 가는지 모릅니다.

야스퍼스의 아내를 지킨 사명 이야기보다 더 위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죄에 대한 인류의 형벌 앞에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 그분은 자신이 지실 저주의 십자가가 너무나 감당키 어려운 줄 아시기에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피하지 않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적당히 피하시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실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예수님에게 혹자들은 피하라고 이번만은 면하라고 부탁하지만, 예수님은 그 길을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명예 때문도 아닙니다. 그 길이 많은 사람이 박수 쳐주는 환영의 길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신 이유는 그 길이 ‘사명’의 길이시고, 주님이 그 길을 가셔야 ‘생명’과 ‘구원’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나뿐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모두를 잘살게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에 그치면 유익이 없습니다.

비록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신 사명이 있다면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임을 인정하고 일어나 가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인생에 가장 후회 없는 걸음을 걷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kisung
Sep 2.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