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미국에 공부하러 와서 첫 번째 치른 시험이 운전면허 시험이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국의 치열한 상황을 극복하고 운전하던 사람이라 당연히 붙을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테스트 드라이빙을 하고 차에서 내린 시험관이 말합니다. “너는 굉장히 위험하게 운전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이길 “넌 신호가 없는 사거리 스톱 사인에서 잘 섰다. 그러나 출발하는 과정에서 네가 제일 먼저 섰는데 출발을 늦게 해서 다른 차가 먼저 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먼저 도착했으면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먼저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스톱하고 반드시 속으로 3-5를 세고 가라고 선배들이 조언해서 안가고 숫자 세고 갔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아마도 내가 숫자를 늦게 센듯 합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그에피소드가 생각이 납니다.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는 성경 말씀 중 한 부분이 눅13:30절입니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합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늦게 하시거나 사명을 늦게 발견한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주님의 마음은 좀 다르셨을 것입니다. 먼저 된 자라고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면서 진정한 신앙의 자세는 잃고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정말 유대인들보다 나중 믿은 사람들이 먼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신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중 믿은 사람들도 곧 먼저 된 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느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녀 결혼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아우보다 형이 먼저 장가를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혼해도 아우보다 형이 먼저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자녀의 능력이나 상황이 다를 수 있으나 부모의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서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하지만 은근히 부모의 내면은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도 이렇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먼저 된 자식이 신앙도 잃고, 사명도 잃고, 자기 멋대로 살아 책망받을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 자식이 먼저 사명을 회복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회복하길 원하실 것입니다.

설혹 먼저 믿은 사람이 신앙이 연약해 샛길로 빠져 나중 믿은 사람이 먼저 되는 상황이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그가 먼저 되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 나중 믿은 사람도 곧 먼저 믿은 자의 반열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교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먼저 믿고 열심히 사명 감당하던 분들이 점점 시들어지고 다른 분들이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물론 사역을 쉴 수도 있고 할만한 여건이 되면 바꾸어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적인 신앙의 연약함이나 나태해짐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듯 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목사의 마음이 이런데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제가 신앙의 시험관이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먼저 출발해서, 먼저 사명의 자리에 도착했다면 또다시 그 순서를 잃지 말고 끝까지 먼저 가는 신앙인이 되시라”고 말입니다. @kisung

Aug 26,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