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는 스님들의 교만과 아집을 없애기 위해서 탁발(托鉢: 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을 해서 먹고 살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탁발은 “비럭질”을 의미합니다. 거지처럼 “발우(鉢盂)”라는 그릇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구걸해서 먹고 사는 생계 방법입니다.
물론 이런 행동은 음식을 보시해 주는 사람들에게 복덕(福德)을 쌓게 해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구도자들에게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해 주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칫하면 출가한 사람이 오히려 “스님”이라는 이름으로 부(富)를 누리고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어 본래의 취지였던 득도(得道)를 포기하고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구도의 방법입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게 하실 때, 지팡이나 배낭, 양식이나 돈, 그리고 입고 있는 옷 외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게 하시고, 마을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신세를 지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집이 부하든 가난하든 가리지 말고 한 곳에 머물면서 그에게 복을 빌어 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누가복음 9:1~6)
의식주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사명에만 집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중도에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섬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자신을 아는 것(Knowing thyself)입니다. 몇 억 만 광년이 걸리는 먼 우주에 떨어져 있는 별과 성단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가운데도 작은 일로 인해 마음이 옹졸해진 채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에서 제일 인식하기 어려운 존재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Socrates)는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를 아는 것이 결국 철학의 시작이고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근세 철학의 문을 연 데카르트(Descartes)의 방법서설의 토대가 된 것도 “생각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서 부터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가르침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인지능력입니다. 즉, “인지하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는 능력(Cognition of Cognition)입니다. 웃고, 울고, 화를 내고,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메타인지 기능”입니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인간의 지적 역량이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고 설명하며 인간 지능 가운데 “자기 이해 지능/ 자기 통찰 지능”을 포함시킵니다. 이 지능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인지 능력을 말합니다. 즉 자신은 누구인가, 자신은 어떤 감정을 가졌는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등 자기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기능이 발달된 사람은 자신을 잘 압니다. “내가 화를 잘 내는 사람인지”,
“내가 우울한 사람인지”, “부정적인 사람인지” 스스로를 잘 인식합니다. 그래서 매사에 자신을 되돌아 보고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자신을 제대로 알고 집중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 메타인지 기능이 강한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가장 좋은 경우의 수를 뽑기 위해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 결과 역경 속에서도 올바른 방향을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자기 이해 기능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성이 발달된 사람일수록 이 메타인지 기능이 뛰어납니다. 그러나 이 메타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자기만 잘난 줄 압니다. 도무지 “자기반성”이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본연의 모습을 쉽게 상실해 버립니다.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서 세상을 둘러보면, 세상이 참 많이 달라 보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보는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시각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행동은 음식을 보시해 주는 사람들에게 복덕(福德)을 쌓게 해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구도자들에게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해 주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칫하면 출가한 사람이 오히려 “스님”이라는 이름으로 부(富)를 누리고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어 본래의 취지였던 득도(得道)를 포기하고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구도의 방법입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게 하실 때, 지팡이나 배낭, 양식이나 돈, 그리고 입고 있는 옷 외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게 하시고, 마을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신세를 지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집이 부하든 가난하든 가리지 말고 한 곳에 머물면서 그에게 복을 빌어 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누가복음 9:1~6)
의식주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사명에만 집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중도에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섬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자신을 아는 것(Knowing thyself)입니다. 몇 억 만 광년이 걸리는 먼 우주에 떨어져 있는 별과 성단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가운데도 작은 일로 인해 마음이 옹졸해진 채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에서 제일 인식하기 어려운 존재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Socrates)는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를 아는 것이 결국 철학의 시작이고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근세 철학의 문을 연 데카르트(Descartes)의 방법서설의 토대가 된 것도 “생각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서 부터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가르침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인지능력입니다. 즉, “인지하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는 능력(Cognition of Cognition)입니다. 웃고, 울고, 화를 내고,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메타인지 기능”입니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인간의 지적 역량이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고 설명하며 인간 지능 가운데 “자기 이해 지능/ 자기 통찰 지능”을 포함시킵니다. 이 지능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인지 능력을 말합니다. 즉 자신은 누구인가, 자신은 어떤 감정을 가졌는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등 자기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기능이 발달된 사람은 자신을 잘 압니다. “내가 화를 잘 내는 사람인지”,
“내가 우울한 사람인지”, “부정적인 사람인지” 스스로를 잘 인식합니다. 그래서 매사에 자신을 되돌아 보고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자신을 제대로 알고 집중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 메타인지 기능이 강한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가장 좋은 경우의 수를 뽑기 위해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 결과 역경 속에서도 올바른 방향을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자기 이해 기능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성이 발달된 사람일수록 이 메타인지 기능이 뛰어납니다. 그러나 이 메타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자기만 잘난 줄 압니다. 도무지 “자기반성”이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본연의 모습을 쉽게 상실해 버립니다.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서 세상을 둘러보면, 세상이 참 많이 달라 보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보는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시각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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