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유진이가 걷기를 시작한 후 18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함께 섬기던 교회, 어느 집사님이 경영하는 인쇄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출입문이 자꾸 열려 아이가 문밖으로 나갈까봐 출입문에 닦아가 문을 닫았습니다. 그 순간 유진이가 내 뒤를 따라와 문 틈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것을 모르고 저는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자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 여린 손이 날카로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문틀에 이겨져 피가 흐르는데, 너무 당황이 되어 911로 전화하는 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그 순간 빨리 소독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로 옆 가게에서 알코올과 솜과 바셀린을 구해 그 손을 소독하는데 아이는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기절할 정도였으며 울음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바셀린을 바르고 붕대로 잘 감아 주었지만 여린 뼈마디가 걱정이 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았는데 천만다행으로 뼈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이에게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어느 장소에 가서든지 문을 통과할 때면, 아이가 들어가지 않고 멈추어 서는 것이었습니다. 문을 잡아 주어 확실히 문이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후에야 조심스럽게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문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한 번의 아픔의 기억이 있었는데, 7살 때였다고 기억합니다. 유진이가 모유를 뗄 때의 상처 때문인지, 우유병에 대한 집착이 커서, 많이 먹지도 않았지만, 어릴 때에는 우유병을 물고 잠이 들곤 하였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치아가 좋지 않았고 충치를 치료하러 치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치과의 분위기에 먼저 놀라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기구들이 철로 되어 있고 뾰족한 물건들이 무척 자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부모인 저의 무지 때문에 아이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겨주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소아 치과의 필요성을 후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무서워하는 아이를 더 무섭게 야단을 치며 치료 의자에 강제로 앉혀 놓고 아빠와 엄마는 양팔을 잡고 간호원은 양다리를 잡고 의사 선생님은 치아 마취를 위한 주사기를 들고 입을 벌려 마취를 하는 과정이 얼마나 원시적이고 무지했었는지... 더 심각했던 것은 마취가 된 것으로 알고 아이의 양팔과 양 다리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충치를 뽑는데 이것은 아이에게 엄청난 고문이었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고통을 이기지 못한 아이는 양 다리를 잡고 있던 간호원의 가슴을 발로 차는 바람에 치료도 실패로 돌아갔고 아이는 아이대로 잊지 못할 나쁜 기억으로 남겨지고 말았습니다.

그 일 이후로 그 치과 근처를 지나기만 해도,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겁을 내던 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유진이가 치과를 꺼려하는 이유는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도 무지하였을까?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아도 결코 지혜롭지 못했던 것들을 자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더욱 안타가운 것은, 어릴 때 아픈 기억들은 다 잊혀지는 것이려니 하고 쉽게 넘기고 싶었지만 아픔의 기억들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남게 되어 자신에게 닦아오는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도전과 용기가 약해지고 두려움의 상처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로 막고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노력해 온 것은 그의 인생 속에 나쁜 기억들 보다 더 좋은 기억들로 채워지도록 여행이나 음악적인 체험이나 운동 등을 통해 즐기는 것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