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함께 참석했던 모 권사님이 80대의 한 어르신께 물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어르신은 별거 하는 거 없고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답하셨습니다. 답변을 들은 권사님은 나름 어르신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은 저녁마다 일해야 해서 그런 여유가 없는데 어르신은 저녁마다 그렇게 TV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르신이 한마디를 던집니다. “걱정마라 곧 온다.” 권사님의 표정이 참 묘해졌습니다. 이 말을 좋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 때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10대는 기어가는 듯하고, 20대는 걸어가는 듯하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개구쟁이 어린 아이였을 때는 얼마나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가게에 가서 내 마음대로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는 그 환상 하나로도 어른은 참 좋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저 또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세월이 빠른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빠른데 얼마나 더 빨리 가게 될지, 어르신의 말씀, “걱정마라 곧 온다”라는 말씀이 곧 현실이 될 것임을 알기에, 그 말을 들으며 실컷 웃었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날아가고 있는 인생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옛말 가운데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바탕의 봄꿈과 같아 덧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결국 아주 짧은 시간을 누리는 유한한 존재일 뿐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사오십대에 정년은퇴해서 매일 산행을 하거나, 공원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한때 잘 나갔던 사람들도 꽤 있지만, 은퇴하고 나니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더이상 찾아주는 사람도, 알아주도 사람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일장춘몽이요, 전도서의 말씀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느껴질만 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촌각을 다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는 천년만년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극히 유한한 짧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간의 속임수에 넘어가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금방 없어지는 것,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에 목숨 걸고 악착같이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잠시 있을 것을 위해, 헛된 것을 위해, 잠 잘 시간도 아껴가며 바쁘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며 살아갑니다.
전도서 3장은 심을 때가 있으면 심은 것을 추수할 때가 있고,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씀해 줍니다. 문제는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입니다. 금방 기한이 차고 곧 올 거라는 것입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시간은 금방 금방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기에, 대신 이 빠른 시간 속에서, 언젠가 목적이 이루어진 삶을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욕심이나 세상의 헛된 영화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이자 진리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나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았노라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의 짧은 인생의 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우리 모두에게 매순간 넘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