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단어는 “마중”이라는 말과 “물”이라는 말의 복합어입니다. 마중은 올 사람을 위하여 미라 나가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버스 정류장에 나가서 기다린다는 것을 우리는 딸을 마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에도 마중물이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모두 수돗물을 쓰고 있지만, 오래 전에 시골에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좀 더 발전된 경우에는 마당에 펌프를 박아서 펌프를 통하여 물을 길어 썼습니다. 그 펌프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중요한 것이 마중물이었습니다. 물을 길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물은 펌프의 피스톤 아래로 빠져 내려갑니다. 이때가 되면 오래된 펌프의 피스톤과 펌프 벽에 공기가 새고 압력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물이 길어 올려지지를 않습니다.

이때에 요긴한 것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입니다. 마중물을 부으면 물이 펌프의 피스톤과 벽을 연결시켜 공기를 빠지지 않게 하므로 물이 새지 않고 끌려 올라옵니다. 맑고 시원한 물을 얼마든지 많이 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인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마중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약간만 마중물 같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련만, 냉혹한 세계에서는 마중물 같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고, 격려하면서, 사람을 소개하여 뿌리내리도록 하는 사람이 바로 마중물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공동체는 냉혹한 공동체에서 친근한 공동체로 변화됩니다. 새사람들이 쉽사리 새 사회에 적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사람으로는 다윗에게 요나단 왕자가 마중물 같은 사람입니다. 평민 출신의 다윗이 궁중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요나단이 다윗을 좋아하여 도움을 주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바울에게는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마중물입니다. 특히 바나바는 회심한 후에도 기독교 공동체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바울을 안내하여 예루살렘공동체에 연결시켜 줍니다. 바나바의 소개와 천거 및 변호를 통하여 바울은 사도들과 형제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마중물 같은 사람 바나바를 많이 두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고독한 군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시대 속에서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마중물 바나바가 됩시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 시대의 바울을 낳게 하시고 붙드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