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정일이나 정은이에겐 무슨 꿈이 있는가? 2천만 내 동포들이 기아에서 허덕이고 질병 가운데 죽어가고 국경을 넘어 탈북하는 저들을 탄광이나 강제 노동장에 끌고 나가 동물처럼 학대하면서도 과연 민족을 살리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한 톨의 밥이나 옥수수 몇 알을 나누어 주면서도 민족 운운 할 자격은 있는 것일까.

남과 북의 차이점에 대해 난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다름아닌“꿈의 차이라고”. 공산국가가 망하게 된 원인 중에 제일은 자기 백성에게 꿈을 심어 주질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꿈이 없으면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GNP 2만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북한은 GNP가 960이란다.

내가 잘 아는 어느 분이 수십년 만에 북에 둔 아들의 생존 소식을 알고 북에 찾아 갔다. 북의 산야에는 곡식을 심었으나 열매가 제대로 없어 농사는 흉작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집 앞 조그마한 텃밭에 옥수수니 호박이니 하는 농작물을 심었는데 그렇게 탐스럽게 많은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다. 왠고 했더니 집단 농장에서는 눈치만 보면서 일을 했었고 자기 집뜰에 심은 곡식들엔 거름을 주고 김도 메주고 오물을 땅속에 뿌리고 부엌에서 나오는 잿더미, 산에서 뜯은 풀들로 모두 거름을 만들어 땅에 묻어 주었더니 풍족한 거름이 영양분이 되여 농사가 잘 되었다는 것이다. 협동농장에는 꿈이 없었다. 그러나 한 뼘의 땅이지만 자기 것에는 꿈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지중해 동부에 “초생 달처럼 생긴 땅” 모든 악조건은 다 가지고 있었다. 지중해 기후로 무더운 여름에다 비는 불규칙하다. 강우량이 적고 물이 귀한 곳이다. 대부분 건조한 불모지라 서부지역 샤론지역을 빼면 거의가 사막이요 돌짝밭이었다. 남북으로 요단강이 흐르지만 헬몬산 서편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갈릴리 호수를 거쳐 요단강을 거쳐 사해로 320Km 정도 흘러 들어가지만 사해바다는 받기만 하고 주는 법이 없어 결국 물이 썩어 물고기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소금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아 세계 앞에 강성 대국으로 군림하고 세계금융권을 좌우하는 힘을 가졌다. 가장 작은 상처투성이의 땅, 지리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1917년 영국의 발보아 외상에겐 이곳이 역사적으로 비쳐볼 때 가장 엄청난 큰 사건들을 던진 나라였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에게 있어 유대인은 세계의 수수께끼다. 인구 수는 적고 나라도 없이 세계에 흩어졌지만 저들이 세계 금융권과 자본을 지배하고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유대인들은 꿈이 있는 민족이었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믿는 유대인들은 자손대대로 하늘의 별과 같이 해변의 모래알과 같이 번성할 것을 그들의 가슴 속에서 지우질 않았다. 선민의식을 가지고 자부심을 느끼고 살았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질 않는다는 성경 말씀을 마음판에 담고 살았다.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는 민족이었다.

전쟁의 위기가 있었을 당시 나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집사님이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때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목격했다. 캐나다에 유학온 유대인 학생들이 줄을 지어 여권 사진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저들에게 물어 보았다. 왜 여권을 만드느냐고. 저들의 대답은 일률적으로 "이스라엘에 전쟁이 날 것 같아서 고국으로 돌아가 전쟁을 해야 한다"고….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순간 난 양심이 부끄러웠다. 내게도 저런 정신이 있을까. 조국에 전쟁이 터질 것 같을 때 고국으로 돌아가서 군에 입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 부분이었다.

애굽생활에서 출애굽,홍해의 기적, 광야생활에서의 기적,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정복,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시대, 그런 와중에도 숱한 시련과 핍박, 노예생활, 포로민족, 온갖 고통을 다 겪으면서도 저들 저변에 깔려진 꿈을 그 누구도 지워 버릴 수 없었고 그 꿈이 오늘의 이스라엘임을 성지의 땅을 밟으면서 알게 되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이민자들이여,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긍지와 꿈을 가지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