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정량(定量)이 있다고 합니다. 요식업을 하시는 분들은 말하기를, 사람은 평생 먹을 음식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빨리 먹으면 빨리 죽고, 천천히 먹으면 남은 정량을 다 먹을 때까지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식 장수(小食長壽)라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의사들도 말하기를, 사람들의 심장 박동의 수도 정해져 있어서 심장이 빨리 다 뛰면, 빨리 죽고, 심장이 느리게 뛰면 아직도 뛰어야 할 정량이 남아 있어서 오래 산다고 합니다. 정말 황영조나 이봉조 같은 마라토너들의 심장은 아주 느리게 뜁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호흡이 가빠서 헥헥거리는 사람들치고 오래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 관상가들은 사람마다 뛰는 맥(脈)의 정량이 있어서, 맥을 짚어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맥박이 빨리 뛰어서 정량을 다 채운 사람들은 빨리 죽고, 맥박이 느리게 뛰는 사람들은 오래 산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일수록 맥박이 뛰는 횟수가 적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한 서점 주인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람마다 읽어야 할 책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빨리 그 정량을 다 채우면 빨리 죽고, 반대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채워야 할 정량이 많이 남아 있어서 오래 삽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책을 많이 읽는 학자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거나 건강이 안 좋아서 고생을 합니다. 하지만, 책보다는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 누군가가 웃자고 만들어 낸 소리이겠지만, 조용히 그 내용을 곱씹어보면, 그 말 속에 옛 어른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이 편파적이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량불변의법칙”(定量不變法則)을 통해 세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함을 역설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적당한 분량의 때가 있습니다. 항상 슬픈 사람도 없고, 항상 좋은 일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항상 건강한 사람도 없고, 반대로 항상 병약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가 다 때가 있는데, 문제는 그 분량의 삶을 살아갈 때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승패가 결정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인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립보서 4: 11)’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든 면에서 ‘가난한 시간’과 ‘부유한 시간’이 공평하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평생 동안 가난한 사람도 없고, 반대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런데 소위 위인(偉人)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배부름의 시간이 궁핍의 시간보다 많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궁핍의 시간을 남보다도 더 잘 소화(燒火)해 낸 사람들입니다. 넉넉함 속에서 게을러지지 않고, 궁핍함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고난을 이깁니다. 그리고 묵묵히 주어진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아갑니다. 그가 바로 인생의 승자입니다. 인생의 승패는 ‘소유의 유무’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인생의 승리는 주어진 ‘정량(定量)’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