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I think, therefore I am ;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생각이라는 관념을 통해 존재의 유무, 살아 있는 자인가 죽은 자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생각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생각의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8:6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생각은 생각인데 육신의 생각이 있고 영의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소속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하나는 사망이고 하나는 생명과 평안의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육신의 생각은 무엇이며 영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바로 알려면 사람의 구성 요소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흔히 세상에서는 사람을 이원론적으로 봅니다. 하나는 육체로 그리고 또 하나는 정신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는 보이는 가시적인 부분이요, 정신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부분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의 구성 요소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5:23절에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spirit)과 혼(soul)과 몸(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은 보이는 외면적인 부분과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부분이 있는데, 보이는 부분은 육(body)이라면 보이지 않는 부분은 영(spirit)과 혼(soul)의 부분으로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혹 어떤 분들은 영과 혼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쓰는 분들도 있지만 영혼의 분류 여부는 성도의 영적 생활을 엄청나게 좌우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확실히 알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섬기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혼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정말 위험천만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어서 그 정신적 부분으로 철학자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문학가도 되고, 정치인도 되고, 사업가도 되지만, 그들이 영의 생각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한 그들의 생각은 혼적인 생각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세상에서 착하게 살 수도 있고, 많은 공헌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세상적 선을 가지고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르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지 아니하였다면 그것은 영의 생각이 아니라 혼적인 생각에 불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혼적인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영의 생각과 반대되는 개념의 육적인 생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의 선언과 같이 사망의 결과를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혼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 성장에 치명타를 가져올 뿐 아니라 영생과 영멸을 가르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당신은 지금 세상을 살아갈 때 혼적인 생각으로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영적인 생각으로 살아가십니까? 다시 한 번 로마서8장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