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工夫)라는 말을 중국어로 읽으면 재미있게도 ‘쿵푸’입니다. 중국 고유의 무술인 쿵푸와 발음이 같습니다. 마치, ‘쿵푸’를 하는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하고 심혈(心血)을 기울여 연마하는 것이 ‘공부’라고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는 때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의 ‘보물’이 오늘의 ‘고물’이 되고 있습니다. 충분한 재교육과 연장교육이 없으면 빨리 진화해가는 속력에 눌려 낙오되기 십상입니다. 학문과 직업도 많이 세분화되고, 상호연관적이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공부가 있지 않으면, 치명적인 실수를 하거나,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은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수할 수 있는 기회마저 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노인이 되었다”는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노인은 “새로운 교육에 대해서 NO하는 인간”입니다. 공부를 그친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이미 노인입니다.

예전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어렸을 때 아주 좋아하던 아무개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칠순을 바로 눈앞에 둔 순백(純白)의 머리털을 가지신 목사님이 되셨지만, 구수한 말투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함은 예전과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설교 중에 ‘다니엘의 사자굴 이야기’를 하셨는데, 35년 전에 하셨던 이야기의 내용과 전개 순서가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유년의 설교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다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정겹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목사님이 예전의 교회를 사임하게 되셨던 이유가 바로 그 ‘다니엘의 사자굴’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사자굴 이야기를 100번 이상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성도님은 “우리는 예배 시간마다 사자굴 속에서 맹수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불평할만큼 목사님의 주 무기는 다니엘의 사자굴이었습니다. 이제 목사님의 은퇴가 1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교회를 떠나시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교인들의 맥아리 없는 표정 속에서 그들도 이미 ‘사자굴’ 속에 갇혀 배고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구태의연한 생각을 가지고, 배우기를 게을리 했다가는 ‘매력 없는 신앙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 본질을 드러내야 하는 세상은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계속해서 재해석되어야 하고,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 안에서 불경스럽게 인식되던 것들 중에서 이제는 교회의 중심활동으로 자리 잡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지식한 쇄국주의자처럼, 변화를 거부하는 딸깍발이가 되기 보다는 그 변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자세가 더 필요할 것입니다. 2011년에는 변화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