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관 건립위원회가 1980년에 발족되었다.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는 제 2부 1장 2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초대(1980~1981년) 위원장은 방창모 박사(에모리 대학 수학과 교수), 2대(1982년) 위원장은 신영교씨(창고식품 대표), 3대(1983년) 위원장은 이상호 씨, 4대(1984년) 위원장은 송준희 씨, 5대(1985년) 위원장은 임종호 씨(전 라이온스클럽 회장), 6대(1986~1987년) 위원장은 박선근 씨(전 미주총연회장), 7대(1988년) 위원장은 이재승씨(미주 사업개발 부동산 대표). 8대(1989년) 위원장은 박선근 씨, 9대(1990년) 위원장은 황신자씨(전 한미부인회 회장), 10대(1991년) 위원장은 박명자씨, 11대(1992년) 위원장은 우병욱 씨, 12대(1993~1994년) 위원장은 손광석 씨(작고), 13대(1996~1998년) 위원장은 박선근 씨 등으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1997년 12월 5일에 한인회관 구입 계약식을 거행하였던 것이다.

당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 사무총장직을 맡아 동분서주하면서 실무를 책임지던 은종국 씨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누구도 맡기를 꺼려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서 누군가 해야 할 일임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뜻을 모았고 해내게 되었다. 미국에 이주하여 애틀랜타 생활 23년 동안, 많은 일과 만남이 있었지만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다. 지금도 한인회관을 방문하면 그 지나간 순간 속에 함께 의미를 나누었던 많은 분들이 떠오르며 진정 감사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에 그분들의 이름을 다 기록하지 못하겠지만, 그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1) 한인회관 구입 과정

새로 구입하는 한인회관은 3.5에이커의 대지와 건평 1만 스퀘어피트 넓이로 뷰포드 하이웨이에 접하여 입지하고 있다. 옥내 사무실로 쓸 수 있는 건물이 3,023스퀘어피트이고 체육관으로 쓸 수 있는 건물이 7천 스퀘어피트이다. 이 빌딩은 건물 주인이 고지 가격으로 90만 달러에 부동산업자에 내놓았으나 한인회관 건립위원회에서 56만 달러에 신청하여 계약이 진행되었다.(주간 한국 1997년 8월 4일 자 기사와 주간동남부 1997년 8월 1~7일 자 기사 참조)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는 새로이 구입되는 회관 건물 가격 56만 달러를 다음과 같이 조성하고자 계획을 수립하였다. 먼저 애틀랜타 한국학교가 그 부지를 사용하여 새 한국 학교를 짓는다는 조건으로 218,600달러를 내어놓는다.

그리고 당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가 소유하고 있는 현금 모금액이 106,618달러에 달하였고, 과거에 샀던 글렌우드의 한인회 부지를 박선근 건립위원장이 개인적으로 143,000달러에 매입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까지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는 46만8천여 달러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건물 구입비와 수리비 예산 중에서 10만에서 15만 달러만 추가로 모금하면 이 한인회관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회관 건물이 완전히 매입되면 애틀랜타 한인 사회 각 단체들이 적당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세를 들게 할 것이고, 이 건물에서 나오는 렌트비로 어느 정도 은행 융자의 재정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1997년 7월 28일 저녁 7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 위원들은 새로 매입할 회관 부지와 건물을 보면서 이것이 한인회관으로서 적합한가를 먼저 면밀히 검토하였다.

이 날 저녁 8시 서울가든에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는 은종국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박선근 위원장이 회관 건물 구입에 관한 전체 상황을 설명하였고, 이승남 한인회장은 임기 안에 회관을 구입하겠다는 열성의 인사말을 하였으며, 장학근 부위원장은 배경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하였다. 이어서 구입하려는 한인회관의 장단점에 대한 의견이 개진된 이후에 표결에 붙인 결과 20여 명 위원들이 거의 만장 일치로 찬동함으로써 이 건물을 사기로 결정하였다. 전권을 위임한 사람까지 합한 공식 집계로써 찬성 33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