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X새끼야!”
“얘! 너 동생한테 웬 욕을 그렇게 하니?”
“아빠나 잘해요! 씨이!”
“아니, 저 녀석이……?”
“아빠는 엄마한테 이년이 뭐예요?”
“이 자식아! 그건 아빠가 화가 나서….”
“저도 지금 화났단 말이에요!”

청소년들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은 가정을 비롯하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오늘날 청소년이 흔들린다는 사실은 청소년 문제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부분에서 흔들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부분에서 흔들리고 있다. 가치관, 윤리관, 도덕의식, 정체성, 관계성, 신앙 등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총체적 위기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장차 어머니가 될 여학생이 성적으로 흔들리는 일이다. 사회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적지 않은 여학생들이 이른바 원조교제라는 성매매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도 혼전 성경험이 자꾸 증가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전통적인 성윤리가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뿌리째 뽑히고 있다. 청소년이 흔들리고 있고, 그 흔들린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 가정이 흔들리고 있고, 그런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이 또 흔들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런 아이들이 모인 학교가 흔들리고, 학교가 흔들리니까 이 사회 전체가 흔들리는 악순환의 현상을 우리는 언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을 요즘 ‘붕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붕괴가 사회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야말로 신뢰의 붕괴, 인격의 붕괴, 가정의 붕괴, 교실의 붕괴, 사회의 붕괴가 나타나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가정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나친 간섭과 억압은 자녀로 하여금 자신감을 잃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지나친 방임은 권위, 체제를 무시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사회에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권위가 있다. 권위주의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 학교의 붕괴를 논하면서 학교라는 권위와 체제를 무시하는 현상은 가정에서의 방임적 양육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청소년 문제를 가정에서 찾는다면 바로 부모의 양육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모가 지나치게 자녀의 기를 살려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갖고 성장한 자녀들이 커서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고 지나치게 부모가 자녀를 억압하거나 야단치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다. 잠언에서는 초달을 금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녀가 잘못되면 회초리를 들어야 된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기의 문제이다.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가정의 자녀들도 때리고 욕하고 내몰아치면 자녀들은 틀림없이 잘못될 것이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엡 6:4)라고 했다. 때리고 욕해서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이므로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자식이라도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자녀와 인격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는 대화가 회복되어야 한다. 대화가 없으면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과 같이 병들게 되어 있다. 모든 문제는 서로 관계가 좋고 즐거우면 곧 해결될 수 있다.

부부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에게 훈육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자식에게 어떤 말을 했을 때 자녀로부터 “엄마, 아빠나 잘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가정 붕괴와 사회 붕괴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자녀들이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자라야 하는데 자녀들의 잘못을 부모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쫓아다니면서 감시하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에게 신앙을 갖도록 하고 신앙을 향상시켜 주는 길 밖에는 대책이 없다. 신앙이 아닌 그 무엇으로 청소년들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신앙을 무조건 강요해서는 안된다. 부모 자신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것을 생각해 보면 문제의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전요섭 목사, 황미선 사모(한국가정상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