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간 Cleveland, Ohio 를 잠깐 방문하고 돌아왔다. 큰 아들이 그곳에 있는 사립 대학교인 Case Reserve Western University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어 이사해 주어야 하기에 겸사겸사 하여 다녀왔다. 그 동안 아들, 며느리가 한국에서 있었기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해서 이사 짐을 싣고 12시간 운전하고 올라가면서, 또 학교 가까운 곳에 마련한 아파트에 이것 저것 필요한 것들을 준비시켜 주면서 그 동안 쌓였던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 부부와 함께 나누었다. 단연코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가 신앙생활 잘하라는 이야기였다. 공부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앞으로 모든 장래도 하나님께서 은혜을 주셔야 앞길이 열릴 것이기에 겸손히 신앙생활 잘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게 들려 주었다. 다행히도 그렇게 하겠다고 고분, 고분 대답 잘하는 아들, 며느리가 참으로 고마왔다. 이틀을 우리 부부와 함께 원 베드 룸에서 생활하면서 가정예배를 드리며 꼭 가정예배를 드리라고 신신 당부를 하였다. 아무리 공부가 바쁘고 힘들더라도 가정예배 드리는 것만큼은 지키라고 했다. 가정예배 자료는 우선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큐티 생명의 삶 내용을 중심으로 드리라고 했다.

등록관계로 학교에 가보았더니 학교 입구에 세브란스씨를 기념하는 기념홀이 위풍당당하게 서서 우리를 맞이 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브란스 라는 단어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아마도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고 불려지는 외국인의 이름이 있다면 세브란스라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대학병원 가운데 하나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이기 때문이다. 1885년 의료 선교사였던 알렌의 간절한 바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설립되어 한국 땅에 서양 의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광혜원이 바로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이었다. 1904년 광혜원이 현대식 병원건물을 짓게 되는데 그 때 클리브랜드의 사업가였던 세브란스(Severance) 씨가 병원건립기금을 상당액수 기부함으로 병원건물이 준공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1904년부터 병원 이름을 세브란스씨를 기념하여 세브란스 병원으로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거의 백 년 전에 조선인들을 위해 거액의 기금을 도네이션 함으로 오늘의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이 있게 된 것이다.

2010년 8월 4일 오후 2시경에 클리브랜드의 Case University 캠퍼스 입구에 웅장하게 서 있는 세브란스 홀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들이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백년 전에 백년 후의 비전을 바라보며 아무런 조건 없이 동방의 작은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겨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스치고 지나갔다. 또한 이곳에서 공부하게 된 우리 자녀들이 공부하는 동안 매일 같이 세브란스 홀을 바라보며 세브란스씨의 비전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세브란스씨와 같이 살 수 있는 멋진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의 마음을 가져 보기도 하였다. 세브란스씨는 클리브랜드에서 사업에도 크게 성공했지만 그는 크리스챤으로서 교회와 선교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기회만 주어지면 세계 곳곳에 선교비를 보내었다고 한다. 세브란스 병원을 짓는데 백년 전에 일만 불의 선교헌금을 기부했으며 병원이 세워진 몇 년 후에 세브란스 병원을 직접 방문하여 세브란스 병원의 발전을 위해 수만불의 발전 기금을 기부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세브란스 홀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이 순서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바울 사도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엡2:10) 선한 일을 위하여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더 많아져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