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지역의 한인 상권은 처음에는 미국 내 타 지역의 한인 상권과 마찬가지로 주로 흑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주종을 이루었고, 다수의 한인 사업체들은 식품, 잡화, 의류, 주류, 요식업, 세탁업 등의 업종이었다. 이에 따라 한인 상가들도 1980년대 말까지 식품점, 잡화점, 세탁소, 음식점, 의류점 등이 주류를 이루어왔다.

조지아 한인 상공회의소의 통계에 따르면, 애틀랜타 한인 자영업소는 1994년 기준으로 약 1천5백 개였다. 이 중에 식품점이 4백여 개, 주류점이 1백여 개, 세탁소가 2백30여 개, 도매업이 1백여 개, 뷰티서플라이업이 1백30여 개, 무역업이 70여 개, 식당이 2백여 개, 부동산 및 보험업이 1백여 개, 자동차 정비 및 판매업이 1백여 개, 건설업이 30여 개 업소로 나타났다.

우원득씨의 WD Enterprise는 7개소 이상의 지점을 소유한 Chain업체의 대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Sports Bar 형태의 Three Dollar Café는 1996년도 애틀랜타 내 25개 소수민족 사업체 순위에서 12위로 선정될 만큼 당시 한인 사업체 중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다.

특히 1980년대 말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한인 주류업계의 경우, 1990년대 초 조지아 주 정보가 부부를 포함하여 한 사람이 2개 이상의 주류점을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함에 따라 그 동안 애틀랜타 일대에 10여 개씩 갖고 있던 타워, 그린, 아메리카드 등 대형 체인들이 매물을 내놓으면서 1993년도에 70~80여 개, 1995년도에는 90~100여 개, 1996년 110여 개로 한인 주류점이 늘어났다.

한인이 경영하는 주류업소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Martin Luther King Jr. Drive, 뱅크 헤드 하이웨이 선상을 따라 밀집되어 형성되었으며 Decatur에 있는 Candler Road 선상 등에도 늘어났다. 특히 비즈니스를 다각화하려는 한인들이 자금을 축적하게 된 1990년대 이후 주류업계의 번영은 한인 중산층들의 사업 다각화의 표출이었다.

1990년대 들어 애틀랜타 지역에 한인인구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한인업소들이 문을 열어 한인 사회에 활기를 더해 주기 시작했다. 뷰포드 하이웨이 선상에 위치한 2만 스퀘어피트의 코리아타운 쇼핑 센터가 1990년 착공하여 1991년 6월 완공됨으로써 다양한 한인 대상 업소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한인 사업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김약국이 1987년 뷰포드 선상의 웨스트 파인트리 플라자에서 개업했다. 1990년 미주 동남부 최초로 애틀랜타 한인 타운이 조성된 뷰포드 선상에 한인 종합의료원이 개원하였다. 1991년 애틀랜타 한인 최초의 식품 제조회사 ‘신동양식품’(대표 왕바나바스)이 ‘만나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제조 상품을 기존의 두부, 콩나물, 숙주나물 외에 볶음짜장, 물김치, 깍두기, 배추김치 등의 포장 식품류를 생산하여 한인 주부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주로 식품점 및 식당 등에 야채와 청과물을 배달하는 ‘지니네 청과물’(대표 이한태)이 1992년 6월 뉴 피치트리 로드에 창고를 완공하여 Dekalb Farmers Market의 가격 수준으로 싱싱한 청과물을 업소에 직접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애틀랜타 최초의 한인 뷔페 식당인 ‘청하 뷔페’가 1996년 9월 인터내셔날 플라자 안에 5천 스퀘어피트 규모의 대형 식당으로 개업하여 인기를 끌었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분식 센터들도 한인 타운 내에 개점하였다.

음식점으로는 강서식당, 고향집, 가람식당, 궁전식당에 이어 손동철씨가 아시아나 가든을 1993년 개업한데 이어 1996년 1월 코리아 가든이 개업했다.(한인이민사 16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