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이 된 이지선씨. ⓒezsun.net
전신3도 화상, 9년간 30번이 넘는 수술과 재활치료, 컬럼비아대학 사회복지학 석사학위 취득, UCLA 사회복지 박사과정 합격….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굴곡진 여정이다. 욕됨과 영광. 그것이 그녀, 이지선의 삶이었다.

‘지선 씨’라고 부르면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스물세 살 이지선 양은 이제 어느덧 ‘지선 양’이라고 불리면 민망한 서른세살 이지선 씨가 됐다. 10년전 사고 이후, 많은 것이 변했고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주었다.

최근 출간한 에세이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문학동네)를 통해 이지선은 평탄치 않았던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선물”이라고 당당히 고백한다. 고난, 기적, 감사, 사랑, 희망…….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이다.

이지선은 놀랍게도 예전의 모습으로, 사고 나기 전 그 자리로 되돌려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다. 정말 중요하고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예전에는 몰랐던 사랑과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난은 그녀에게 오히려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많은 것을 잃었고, 오랫동안 극심한 영적, 육체적 고통 중에 앓았지만 오히려 훨씬 더 행복해졌다. 잃고 앓아본 후에야 가족과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고, 겉과 속이 하나돼 ‘진짜 나’로 살아가는 행복을 얻었다.

때로는 친구와 쇼핑하며 예쁜 옷도 입고, 꽃단장하고 남자친구를 만나러가거나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때도 있지만 자신이 ‘덤’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주어진 삶에 감사한다.

뜨거운 것을 만져도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을 때,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을 받아낼 때,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할 때, 한 번도 잃어보지 않고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는 마음들로 인해 깊은 쓸쓸함과 외로움에 남몰래 눈물 흘려야만 했다.

▲지난 5월 18일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이지선씨 ⓒezsun.net

하 지만 기도해주던 교회 사람들, 그녀를 위해서라면 천번만번이라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엄마와 늘 잔소리 투성이지만 동생을 위해 속울음 울던 ‘오까’(오빠), 무뚝뚝하지만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아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기에 꾹 참는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병원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쓰인 수많은 편지와 이메일을 받고, 자신의 강연이 끝난 뒤 두 눈 가득 고인 눈물로 다가와 “당신을 통해 희망을 보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 “세상 가운데 반드시 세우시라” 약속하셨던 그녀 인생의 감독이신 주님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다시 새롭게 꿈 꿀 차례다. ‘살아나간다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장애인들을 돕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우리말 발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번 자원봉사하러 오는 선생님에게 더듬더듬 영어를 공부했다. ‘짧은 손가락으로 밥이나 먹을 수 있겠냐’던 염려를 뒤로하고, 홀로 미국유학을 감행했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3월에는 뉴욕마라톤과 서울 국제마라톤을 완주해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수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하느라 다리는 멀쩡한 곳이 없었지만 42킬로를 육박하는 거리를 뛰며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고통의 시간을 다시 한번 몸에 새겨보았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던 순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 행보가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 하나로 달리고 또 달렸다.

이지선은 고백한다. “헛된 꿈을 꾸는 저를 가엽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헛된 꿈을 못본척 하지 않으시고 그 꿈을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꿈꾸고 주님은 일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