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과 일하다가 의견 차이가 생기면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흥분합니다. 이럴 때는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지니까 무슨 말을 해도 진정이 안 됩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 방법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법’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디 있습니까?” 법이라는 것이 다 상대적인 것인데, 누구나 보는 관점이 다르고, 경험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고양이와 개가 서로 만나면 다투는 이유도 인사하는 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살랑살랑 들고 흔드는데,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내립니다. 반면 고양이과(科) 짐승들은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빳빳하게 들고 공격 자세를 취하고,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내립니다. 그러니 개와 고양이가 만났을 때 개가 꼬리를 드니까 고양이가 ‘어, 해보자는 것이냐’고 덤빈다는 겁니다. 또 고양이가 꼬리를 내리고 있으니까 이를 본 개가 ‘너 긴장했느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의 모든 갈등은 ‘내 법’과 ‘네 법’이 부딪히는 것입니다. ‘내 법’은 옳지만 ‘네 법’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아내의 법과 남편의 법, 시댁의 법과 친정의 법, 목사의 법과 장로의 법이 서로 부딪히면 갈등이 되는 것이지요.

저도 결혼 하고 나니 아내의 법과 제 법이 많이 달랐습니다.
제주도 과수원집에서 7남매의 막내로 자란 아내의 법과 삼남매의 장남으로 서울에서 자란 제 법이 여러 군데서 충돌했습니다. 너무 심하게 충돌하기에 하루는 ‘네 법’으로도 말고 ‘내 법’으로도 말고 ‘하나님의 법’으로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충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루 아침에 사라지진 않았고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성경은 무법(無法/lawlessness)이 죄(罪)라고 말합니다(요한일서3:4).
무법(無法) 하면 ‘황야의 무법자’가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이 무법자는 ‘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법인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나 여러분 모두가 다 무법자(無法者)인 셈입니다.
내 생각, 경험, 방식만이 ‘법’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법’을 무시하는 것이 무법자이고, 바로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법’으로도 말고, ‘네 법’으로도 말고 ‘하나님의 법’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흥분하기 전에, “그러지 말란 법은 또 어디 있는가? 그런 법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